화장품 선물 하나, 복권 당첨된 기분입니다

이 분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등록 2012.06.18 16:11수정 2012.06.1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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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아침 화장품 세트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화장품 세트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신광태

"계장님! 부군수님께서 찾으시는데요."


6월 18일, 아침 9시 20분 경 부군수 비서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부군수께서 지시한 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게 뭐 있더라', 만일 그 ○○사업 추진사항을 물어보면 뭐라고 답하지' 등 부군수로부터 호출 전화를 받으면 짧은 시간에 머리가 복잡해 집니다.

"공무원들의 기본은 원칙입니다. 원칙을 무시한 융통성이란 있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2010년 12월 강원도청 인사발령에 의해 화천군 부군수로 자리를 옮긴 송재명 화천 부군수. 그는 직원들에게 공무원들의 업무추진에 있어 융통성은 허용하되 법령과 조례의 근거에 따를 것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니 호출이 있을 때는 좋은 소리를 들은 예가 없었다는 생각 때문에 (나를 포함한) 직원들에게는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화장품 선물, 복권이 당첨되어도 이보다 기쁠까요!

 송재명 화천부군수
송재명 화천부군수신광태

"계장님 이쪽으로 앉으시죠"


부군수실로 들어서자, 기쁠 때나 기분이 별로일 때도 늘 표정의 변화가 없으신 부군수께서 손님 접대용 자리로 나를 안내합니다.

습관처럼 노트를 펴는 내게 "아니 메모 하실 필요 없고요"라고 말합니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 어느 관광객이 투어 중 겪은 불편사항에 대해 전화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 일요일에 관광객들 안내 하셨습니까!"
"네, 그런데 어느 분께서 불편하셨던 부분을 말씀하신 모양이죠?"
"아닙니다. 어제 우연히 산소길을 갔다가 계장님 일하시는 모습을 봤어요."

잘못 짚었구나! 어제 산소길 투어 중 물위도로 난간 한 곳이 느슨해 진 것을 보고 바로 조치를 취하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어제 산소길이 약간 문제가 있던데 오늘 중으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니, 그게 아니고..."하면서 뭔가 선물세트를 꺼내 놓으십니다.

"이거 별거 아닌데, 어제 집사람과 같이 백화점 갔다가 하나 샀어요."
"이게 뭔데요?"
"화장품인데, 휴일에 나와서 일하는 것도 좋지만, 얼굴이 시커먼게 생각이 나서 샀는데 쓰세요"

감격! 아마 부군수는 휴일 지인들과 산소길을 갔다가 관광객을 안내하는 나를 보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생각에서 화장품 선물을 생각하셨던 모양입니다.

평소 말씀이 별로 없으셨던 분으로부터 이런 선물을 받은 터라 진심이 더 묻어나는 것 같은 상기된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즈음 우리 부서 양준섭 주무관과 정현철 주무관이 싱글벙글한 표정입니다.

"뭔일 있니? 좋은 일 있으면 나도 끼워줘"라는 말에 양주무관은 느닷없이 "계장님! 담배 피우러 가실래요? 라고 말합니다.

난 너희들에게 따뜻한 위로 한마디 못했는데...

 양준섭 주무관
양준섭 주무관신광태

"뭔 좋은 일 있냐?"
"좀 전에 부군수께서 불러서 갔더니, 화장품을 선물로 주시는 거예요"

"야! 너 부군수한테 인정 받은거다. 축하해!"

사실 관광기획 업무 중 마케팅을 담당하는 양준섭, 정현철 주무관은 토요일과 일요일을 반납한지 오래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닌데 주중에는 관광시설 사업 등 본연의 업무를 추진하면서 휴일 단체관광객 수요를 일일이 확인해 스스로 나서서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친구들입니다.

그것을 익히 아는 부군수께서 이들에게도 화장품을 선물한 것입니다. 계장인 내게 '이것 직원들에게도 전해 주세요'라고 할 만도 한데,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부르신 것 같습니다.

"난 부군수님께서 이렇게 잔정이 있으신 분인 줄 몰랐어요"
"야 인마! 너 지난번 나한테 부군수님 결재 받는 게 힘들다고 투덜댔잖아"
"그건 그거고 어쨌든..."

그러고 보니, 내가 계장이란 직책으로 있으면서 토요일이나 일요일 또는 휴일에 나와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고생했다'라는 따뜻한 말이라도 한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계장인 나도 나오는데, 너희들은 당연히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생각을 해 왔었던 것은 아닌지 이번 화장품 선물을 계기로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송재명 #화천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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