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묘역에 묻혀 있는 친구의 묘다.
이경모
식사가 끝나고 총무가 재무보고를 하면서 일순간 친구들이 울컥했다.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6년째 간경화로 투병 중인 친구에게서 받아 온 15만 원에 대한 보고를 들으면서다.
설명인즉 이랬다. 모임 이틀 전에 그 친구는 총무에게 전화를 해서는 다음날 몇 시간 운전을 부탁했다고 한다. 간암치료를 받고 있는 친구가 모임 하루 전에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친구와 5·18 묘역에 묻힌 친구도 찾아가보고 동병상련인 친구를 위로도 해주고 싶어서였단다.
그렇지만 장거리 이동과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결국 만나고 싶었던 친구와 동행을 하진 못했지만 총무는 그 친구와 함께 5·18 묘역에 들러 친구에게 술 한 잔 올리고 점심도 함께 했다.
그 친구는 점심식사 값을 계산하고는 총무에게 하얀 봉투를 내밀며 15만 원 중에 10만 원은 고마운 친구들에게 동창회 찬조금으로 내주고, 5만 원은 항암치료 중인 친구에게 맛있는 것 사먹으라며 전달해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넉넉한 형편도 아닌데다가 긴병으로 정신적 경제적으로 많이 지쳐있을 텐데 그런 마음이 어디서 생겼을까.
"경모네. 자주 찾아보지 못해서 미안해. 친구 덕분에 모임 잘 치렀고 자네 때문에 친구들 감동 먹었어." "항암제가 독해서 많이 힘들 텐데 친구를 위로도 해주고, 고인이 된 친구를 찾아가 함께 열심히 치료하자고 다짐도 하고, 마음을 비우고 병원 치료와 식이요법을 병행하라고 말하고 싶었네. 또 늘 친구들에게 신세만 진 것 같아 적지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내년 모임에는 꼭 함께 가세."동창회 모임 다음 날 친구와 전화로 나눈 대화다.
매일 대소변 이뇨제를 먹고 한 달에 한 번 병원을 찾으며 투병을 하고 있지만 전화 통화 내내 웃음을 잃지 않은 친구의 모습에서 병이 호전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깨어짐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안을 수 있고 고통을 견뎌낼 때 삶의 향기를 발하는 듯하다.
고향친구들은 베이비붐시대에 태어나 배고픈 시절도 맛 봤고, 낀 세대로 자식도 키우고 부모님도 모셔야하며 노후도 준비해야하는 숨 막힌 세대지만 아련한 추억들을 끄집어내어 재포장하며 떠들고 신나게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