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역 박물관에서 원산시를 배경으로. 왼쪽부터 설경이, 필자, 원산역 해설원.
신은미
우리는 오래전에 세워졌다는 원산의 동명 호텔에서 하루 자고 가기로 했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운치 있는 호텔인데, 손님이 거의 없는 느낌이다. 우리 팀 다섯 사람과 유엔에서 파견된 유니세프 직원 외에는 다른 투숙객을 보지 못했다.
우리 부부는 이 호텔에서 제일 좋은 방에 묵은 것 같다. 넓은 거실과 커다란 책상, 그리고 대형 소파 세트까지... 가구들은 예전의 영광을 추억하며 빛바랜 모습으로 쓸쓸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살포시 서려 있는 냉기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분주한 모습의 생기 넘치는 아침이 기다려진다.
아침, 남편이 창문을 연다. 동해의 신선한 아침 바닷바람이 아름다운 햇살과 함께 나의 무거운 심신을 단번에 일으켜 깨운다. 새롭게 맞이하는 오늘이 말할 수 없는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설렌다.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다. 식당 안에는 우리뿐이었다. 늘씬한 아가씨가 우리를 위해 식사를 가져다 줬다. 그 큰 식당에서 혼자 일을 하고 있었다. 설경이가 들어 오더니 반갑게 아가씨와 인사를 나눈다. 식당 종업원 아가씨는 설경이와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인데 평양에서 공부를 마치고 고향인 원산에 내려와 일하고 있단다. 둘은 한동안 친구들의 안부를 물어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여러 번의 작별인사를 나눴다. 작별을 고했음에도 못내 아쉬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 번 더 나눈 후에야 비로소 호텔 식당에서 나왔다. 결혼한 딸을 남겨 놓고 오는 부모마냥 발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손을 흔드는 그 아가씨의 모습이 왜 이리도 쓸쓸해 보이는지... 왠지 우리가 떠나고 나면 당분간 호텔은 텅 비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과밭을 보니... 떠오른 곳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