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년 동안 많은 나라를 여행다녔다. 실은 지금도 여행 중이다. 첫 여행의 계기가 된 것은 멕시코 3+1교환 학생의 공고가 내려 온 때부터이다.(여기서 3+!이란 대학 4년간 3년은 국내, 1년은 해외 수학 기회를 주어 본교로 학점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교환 학생이라는 명찰은 나에게 첫 해외 이동 기회를 주었다. 이전부터 세계 여행에 야망을 지니고 있었던 나는 언제든지 해외에 나갈 만 한 건덕지를 찾았다. 대학 3년 드디어 기다리던 교환학생 공고가 내려왔다.
매 년마다 있는 공고였지만 곧 취업과 4학년의 압박을 받았던 대학 3년의 나는 주저없이 서류를 작성하고 난 후부터 멕시코 학교생활보다는 여행에 대한 기대감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첫 멕시코 행 비행기표도 다른 교환학생들은 단체로 표로 가장 빠른 LA를 경유해 갔으나 난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사촌을 빌어 뉴욕을 경유하는 표를 예약했다. 그로 인해 나의 첫 여행지는 모든 사람들의 로망, 컨템퍼러리의 중심 '뉴욕'이 되었다. 실은 영어도 젬병이었던 터라 걱정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영어의 걱정보다는 뉴욕에 대한 공상과 첫 여행의 설렘은 내 첫 여행의 윤활유가 돼 주었다.
일주일 동안의 뉴욕여행의 기억은 멕시코에서의 한 학기를 사뿐하게 딛게 해주었다. 한 학기가 지나고 방학이 다가오자마자 어른들이 늘 하시는 "처음만 힘들지"라는 말과 같이 바로 근처 이웃나라 배낭여행에 대해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행에 동기를 부여하기로 했다. 배낭여행, 저렴한 여행, 한 달 간의 짧은 여행, 스페인어 사용이 나의 동기 요소들 이었다.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스페인어에 대한 관심과 중남미에 대한 관심은 라틴의 열정에 녹아들었다.
아무도 나와 동행에 주지 않았다. 실은 혼자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여자라서 위험할 것이다, 여자니까 배낭여행보단 가까운 카리브해나 미국이나 다녀와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난 흔히 말하는 똥고집이 쎄서 남의 말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여차저차 그 날이 오고 한 명의 4년차 남자선배와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나는 09학번, 선배는 05학번이다). 그 선배는 교환학생을 관리하고 영어도 워.홀(워킹홀리데이)로 갔다온 경험이 있으며 일본어도 할 줄 아는 나름의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난 선배에게 말했다.
전 관광하러 가는 게 아니라 몸소 체험하고 고생 사서 하는 타입이라서 혹시나 가고 싶은 마음이 이전부터 있지 않았다면 다른 여행 계획을 세우시는게 어떻겠냐고. 선배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지 바로 '상관없어, 가자' 하셨다.
이렇게 우리의 첫 여행지는 멕시코의 남부, 이곳에서 난 멕시코의 새로운 매력을 느꼈다. 멕시코가 살기 좋고 문명과 사회가 발달한 나라라는 것에 동의를 의심찮았다. 멕시코는 이미 유럽인들의 인기 여행지였다. 여행 중 만난 외국인 친구들은 거의 유럽인이었다.
두 번째 여행지, 과테말라. 과테말라는 소식으로 듣기로는 되게 무섭고 세계 살인율 1위라는 무시무시한 타이틀로 우리를 겁먹게 했다. 사실 나도 과테말라에 처음갔을 때의 무서움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가 도착하기 몇 달 전 한인 살인사건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말과 같이 과테말라에는 한인 산업이 많은데 주로 고용자들은 과테말라인이었다. 하지만 낮은 임금과 임금 체금에 대해 불만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과테말라인에게 한국인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직접 느낀 것은 없지만 워낙 악덕 한인사장이 많다보니 현지인들과 얘기할 때 '우리는 한국인이다'라고 말을 먼저 꺼내지 못했다.
과테말라를 뒤로 니카라과, 엘 살바도르, 코스타리카, 파나마, 온두라스까지 우리는 우리가 있는 멕시코를 제외하고 벨리즈를 제외한 중미의 6개국을 돌아보았다. 여행을 다니면서 현지인으로부터 많이 들은 얘기는 "치노, 치나(chino, china 스페인어로 중국인)". 여행 초기에는 되게 불편했다. 난 한국인인데 왜 나에게 중국인이라고하지?라기보다 어떻게 "코리아나(coreana 스페인어로 한국인)"을 먼저 얘기하지 않는 거지?
당연히 중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인구가 많다는 것은 알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나다니면서 우리에게 치노, 치나라고 하는 현지인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난 중국인이 아니라고 일일이 얘기하고 다녔다.
여행이 계속되고 이 일은 그냥 일상이 되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현지인들에게 '우리는 한국인이야(somos coreanos)'라고 하면 한국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게 진정한 지구촌 글로벌 시대가 맞는 것인가... 난 그래서 일일이 설명했다 중국대륙과 일본섬 사이의 중국, 러시아 국경을 끼고 있는 작은 반도국가라고.. 하지만 여전히 관심없는 듯한 눈빛들이었다.
그래서 '삼성알지?'하니까 안다고 한다. '그거 우리나라꺼야(Samsung es de corea)'하면 '정말? 중국꺼 아냐?(verdad??no es de china?)'라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역시 이것이 세계시장이구나 싶었다. 현재도 여행을 다니고 있는 나로썬 여전히 중남미에 Corea라는 나라가 중국이나 일본에 붙어있는 작은 동네로만 알려져 있는 게 속상했다.
나름의 이유를 분석하자면 1. 내가 가는 어느 나라에도 차이나타운이 없는 곳은 없었다. 2. 아시아산 차 중에 신형은 전부 일제였다.(삼성, 기아, 대우 등의 우리나라에서 수출된 폐차들은 택시기사들이 주로 이용한다) 3. 한국인 여행객이 많지 않았다.
이 중 내가 다루고자 하는 부분는 한국인 여행객이 많이 없다는 것이다. 유럽, 미국, 동북아시아에는 한인 관광객이나 배낭여행자들이 흔하지만 내가 갔던 중남미나 카리브해의 섬들은 한국인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없었다.
교포들의 흔적은 태권도나 음식점을 통해 한 두 번씩 느낄 수 있었지만 말이다. 내가 도미니카 공화국이라는 카리브해에서 3번째로 큰 섬을 들어갈 때 탔던 미국항공계의 항공에는 대부분이 미국인, 도미니카인 그리고 중국인들이었다.
중국인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민자들이 아닌 단순한 여행이라 해도 놀랄 다름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회에서나 선교활동으로 외국의 비여행국을 가지만, 중국은 달랐다.
현지인에게 한국사람들 많았냐고 물어보면 당연 아니었다. 자기가 본 한국인은 내가 처음이라 했다. 도미니카에서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로 가는 선박에 오르기 위해 입국심사가 필요한데 입국 심사관이 나를 막았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뭣 때문에 왔느냐, 얼마나 머물거냐, 비자 있느냐 등등 기본적인 입국 심사 질문이 계속 되고,
들어가려는 찰나 다른 심사관이 나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생전 가보지 못했던 언뜻 불입국자들 취조장같이 보이는 곳에서 난 미국으로 다시 나가는 표와 도미니카로 온 비행기표를 다시 다 보여줘야 했다. 거듭 난 South korea가 Republic of korea 이며 North korea가 communism이고 공산주의에 대한 설명까지 해야 했다.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나라라
모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이 일로 인해 나는 모든 이에게 한국을 알리고 한국인들에게 해외 여행을 권장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들에게는 여행, 가정에게는 이민을 권장하고 가장 효과적이고 가능성 있는 방법은 해외진출 사업에 대한 지원을 정부에서 적극적인 태도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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