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빨갱이 아냐! 먹고살 게 없어서 네 삼촌이..."

[아버지를 찾아 '닛코'로③] 이제야 시작한 '여행길'

등록 2012.06.26 10:42수정 2012.06.2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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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닛코의 신사 건물들
닛코의 신사 건물들장윤선
아버지가 심장혈관이 막혀 수술을 할 무렵, 나는 분당의 가장 비싼 동네에서 학원 강사를 하고 있었다. 수술이 임박하자 아버지는 눈물이 많아졌다. 13시간쯤 걸리는 대수술인지라 의사도 긴장하며 우리들 모두에게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게 했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돌려 우리를 차례로 병원에 불러들였고, 그때마다 한바탕 눈물 바람이 일어났다. 예전에 식구들을 벌벌 떨게 했던 그 모습은 다 어딜 가고 이렇게 쇠약해졌는지, 아버지의 약한 모습은 분노와 연민을 동시 불러왔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수술 전날, 병원을 찾은 나에게 엄마는 통장 하나를 쥐어 주었다.


"니 아버지가 너네들한테 주는 거야. 50만 원씩 넣었다. 아버지가 줄 게 그것밖에 없다고 막 울어쌓는다. 이거 어디 딴 데 쓰지 말고 잘 모셔둬라."

그날 수업은 휴강이었다. 나는 집에 가지 않고 분당 정자동의 휘황찬란한 거리를 몇 시간이나 걸었다. '젠장, 이놈의 동네는 왜 이렇게 잘사는 거냐' 속으로 욕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평생을 힘들게 살았어도 통장에 50만 원밖에 못 넣어주는데 말이다. 그날 병원에서 커피를 마실 때 엄마가 눈물을 찍어내며 들려주었던 이야기들도 머릿속을 휘감아 왔다.

"니 아버지가 청도에서 부산에 왔을 때가 열여덟 살이었는데, 거기서 부두 일을 하다가 만두가게에 취직했거든. 그 왜, 설날에 니 아버지 만두 빚는 거 보면 기가 막히게 잘 하잖냐? 그게 다 그때 배운 거야. 하도 먹을 게 없어서 시장 바닥에서 우거지 주워다가 끓여먹고도 살았단다. 그때 제대로 못 먹고 커서 이렇게 병이 많은가 부다.

그러다가 서울에 와서 주산 부기 배워갖고 목재상에 취직한 거야. 나중에 사업 벌릴 때는 외할아버지가 도와줬지. 너도 알잖아. 친할아버지는 아무 도움도 안 되고. 어린 나이에 고모들에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사느라고 고생 진짜 많이 했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었다. 그리고 여기 오기 며칠 전, 나는 기왕 가는 거 나의 뿌리를 더 생각해볼 양으로 아직도 살아 계시는 작은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작은할아버지가 우리 친가 쪽의 '살아 있는 화석'이라는 엄마의 말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작은할머니의 병환을 핑계 삼아 생전 하지도 않던 전화를 넣으니, 작은할아버지는 한참만에야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았다. 할머니의 병환에 대해 몇 마디 나눈 후, 나는 일본에 갈 일이 있는데, 우리 식구들이 어디서 살았는지 좀 알고 싶다고 운을 뗐다. 전화기 건너편에서는 좀 어리둥절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더니, 잠시 후 대뜸 전화기가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야, 우린 빨갱이 아냐. 진짜 너무 먹고살 게 없어서 일본에 갔다가 네 삼촌이 그리 된 거지 절대 공산주의하고는 아니라니까. 지금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라."


이게 무슨 소린지 깨닫는 데는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작은 할어버지를 진정시키고 나서 내가 알고 싶은 이야기를 듣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잊혀진 과거, 고개를 들다

 닛코 신사 진입로 입구
닛코 신사 진입로 입구장윤선


"일본에서 어디 살았냐고? 그게 왜 궁금한가 모르겠네. 오사카, 고베에서 살다가 나중에 북해도, 거 북해도라고 있어. 거기에서 니 할아버지가 광산 일했어, 광산."
"예? 광산이요? 그거 처음 듣는데."
"광산은 나중에 들어간거고, 처음에는 고물 주워 팔고 노점하고 그랬어."
"그래도 아버지는 일본에서 살 때가 좋았다고 그러시던데요."
"그거는 뭐, 일본에 있었을 때는 아직 어려서 그나마 고생을 덜 했으니 그랬겠지. 사실 고향 아니냐. 조센징이라고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거기서는 그래도 학교도 다녔고. 학교에서 공부도 곧잘 했어. 청도에 오니까 할아버지는 일할 게 아무것도 없고, 니 아버지가 고생고생하면서 먹여 살렸지 뭐. 니 아버지 진짜 고생 많이 했다. 사람이 성격이 좋아 그렇지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자살이라도 했을 거여. 그 고생해서 일궈논 사업도 다 말아먹고. 한이 많아, 한이."

50만 원이 든 통장.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서야 나는 아버지의 생을 조금이나마 재구성할 수 있었다. 내 눈 앞에는 훈도시에 철모 하나만 차고 거의 벌거벗은 몸으로 광산 일에 매달려 있던 일제 시대 어느 광부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 술고래에 무위도식으로 일관했다고 여겼던 할아버지의 생은 또 어떤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우리 가족에게는 내가 모르는 또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인가. 할머니의 고향은 어디이며 어떻게 할아버지와 결혼했는지. 할아버지는 왜 한국에 나와서는 무위도식을 했는지. 또 그 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지. 나는 내 가족에 대해, 나의 뿌리에 대해 이토록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 경악했다.

이제 닛코의 신사들에서 빠져나왔다. 비가 너무나 많이 온다. 닛코의 상징이기도 한 빨간 다리, 신쿄 앞에서 우렁차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나는 잠시 버스를 타고 기차역까지 갈 것인가 고민했다. 그러나 더 걷고 싶다. 인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나는 왠지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도부닛코 역까지는 약 3킬로미터. 짧지 않은 거리다. 이미 양말은 물론 무릎까지 물에 젖어버렸다. 어깨 한 쪽은 완전히 비에 젖었고 나머지 어깨도 별로 성치는 않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서 비닐우산이 자꾸 접혀졌다. 역까지 가는 버스가 몇 대 지나가긴 했지만 끝내 타지 않고 걸었다.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도 천천히 천천히 걸었다. 문을 닫은 기념품점에서 한동안 기웃거리기도 하고, 사무라이의 칼을 파는 가게에서도 한참을 구경했다. 빨간 등에 불이 들어온 작은 술집 앞에서는 정말 오래 망설였다. 내일 비행기 시간만 아니라면, 여기서 하루 자면서 이 술집에서 혼자 사케를 마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발길을 돌려 괜히 뒷골목도 한 번 돌아본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이곳을 떠나는 것이 탐탁치 않았던 것일까. 빗물에 흠뻑 젖어버린 내가 도부닛코에 도착한 것은 거의 막차 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날이 어두워져서 역 앞의 가게에는 노란 불빛들이 즐비하고, 역 안에는 한산한 그런 시간이었다.

뜨거운 캔커피와 아무것도 들지 않은 빵을 사서 허기를 때우며 기차를 기다렸다. 착잡하지만 살짝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은 왜 일런지. 이곳 닛코의 거대한 삼나무 숲에서, 나는 도쿠가와의 유산을 본 것이 아니었다. 그 숲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리고 과거와 끈질기게 잇닿은 내가 살고 있었다.

'새라새로운' 희열 속에서

 닛코의 화려한 건축물
닛코의 화려한 건축물장윤선

역시 새벽에 눈을 떴다. 공항에 가기 전 아침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사다놓은 한국 컵라면과 과자 등속을 옷장사와 미용사의 머리맡에 놓아두고 가방을 잘 썼다는 쪽지도 남겼다. 숙소 옆의 작은 식당에서 며칠 동안 먹어왔던 미소 된장과 밥, 계란 프라이를 먹는데 갑자기 목이 꽉 메어왔다. 밥이 너무 맛있었다. 어제는 오늘과 다르고 오늘은 내일과 또 다를 것이라는 희망에 살맛이 났다.

신오쿠보 역에서 나리타 공항으로 가는 길, 나는 <대망> 한 권을 다 읽었다. 도쿠가와가 아들에게 혹독하게 활쏘기를 가르치는 대목이 있었다. 그날의 분량을 쏘고 이미 팔에 마비가 온 아들에게 좀더, 더, 더 많이, 자꾸 활을 쏘라고 하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대장이란 이렇게 끝없이 활을 쏘는 사람인 거야. 이렇게 외롭고 힘들어도 계속 활을 쏠 수밖에 없는 거야. "

혼잡스러운 역 플랫폼은 여행 가방을 끄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이제, 일본에 또 오게 된다면, 나는 오사카를, 고베를, 북해도를 가보고 말 것이다. 다시 한번, 누더기를 걸친 어린 소년이 저 멀리 기차역 끝에서부터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그 소년은 가만히 내게 와서 왜 이제야 왔냐고 속살거렸다.

'아, 아버지…. 이 여행이 시작이에요.'

나는 조용히 신음했다. 새로 가야 할 여행길이 내 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일본여행 #닛코 #아버지 #추억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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