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공부는 그 다음부터 해도 늦지 않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심은 여행을 통해서

등록 2012.06.29 19:15수정 2012.06.2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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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가 다니는 영어학원을 끊었다. 사실 영어학원을 보낸 이유는 우리가 맞벌이 부부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하지 않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부모들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지금 이 선택을 후회한다. 부모가 이기적이거나 나태하기 때문이지 학원을 가기 싫어하는 아이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사실 영어 단어 시험을 보기 전까지 9살 난 아이는 영어학원 다니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재미있다고도 했다. 나는 속으로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9살 난 아이들이 어떻게 영어 단어들을 외우고 시험에 통과하는지 어른인 내가 봐도 의아한 생각이 든다. 영어교재를 보다가 '이 단어는 아마도 내가 중 2때 외웠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데 초2 병아리같은 아이들이 이런 단어를 외우고 시험을 보는 것이다. 많이 틀리면 학원에 남아서 재시험을 치른다고 한다.

a 불국사 대웅전 뒤에서 잠시 쉬고 있는 아이.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지 아빠는 검열(?)할 수 없다.

불국사 대웅전 뒤에서 잠시 쉬고 있는 아이.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지 아빠는 검열(?)할 수 없다. ⓒ 손영대

내가 학원을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바로 이 '재시험' 때문이다. 학원의 입장에서는 책임지고 학생의 실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기에, 일부 학부모들은 오히려 그런 학원의 노력을 반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물론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각종 크고 작은 시험을 치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면이 있다. 하지만 누가 시험 보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어른들도 평가받는 것을 모두 싫어하지 않는가. 게다가 모든 시험은 필연적으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물론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일정한 성과를 내는 것은 중요한 삶의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리고 기사등급을 평가받는 것도 스트레스 아닌가? '혹시 생나무가 되면 어쩌지' 이런 고민을 누구나 한번쯤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9살 때부터 경쟁과 평가의 늪에 빠지게 해야 하나? 나는 그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이가 학원을 가기 싫어하는 이유 중에는 베짱이처럼 노는 맛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어른들도 일하기보다 노는 것을 더 좋아하지 않는가. 일부 일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서 그 사람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나? 일중독은 한국 사회의 만성질환이다. 어른들이 경쟁과 성과의 터널 속에 갇혀 있고, 그 터널이 끝이 없을 거라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으니 그 사회적 폐해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유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가 학원을 그만 둔 이후로, 우리 부부는 매주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녔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여행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는 거 같다. 엄마 아빠가 모두 여행을 즐기니, 그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도 여행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함께 여기저기를 다녀보니 아이도 여행을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싫어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직까지는.

우리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자주 가는 이유는, 책만큼이나 여행을 통해 느끼고 배울 바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통해서 정서를 일깨우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딱딱하고 차가운 시멘트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 회색의 도시에서 살면서, 윤동주 시인의 '별의 노래하는 마음'을 어찌 체감할 수 있겠는가? 정서적으로 궁핍한 시대에 감성을 일깨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에 우리 부부는 의견을 함께했다.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학원에만 가는 것은 공부에 대한 호기심을 죽이는 일이다. 물론 공부는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내적 동기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특히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심은 여행을 통해서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아이야, 공부는 그 다음부터 해도 늦지 않다.


a  불국사에서 돌탑을 쌓고 있는 아이. 편찮으신 할머니 빨리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을까?

불국사에서 돌탑을 쌓고 있는 아이. 편찮으신 할머니 빨리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을까? ⓒ 손영대

#공부 #여행 #불국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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