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모양이 ㄱ, ㄴ, ㄷ... 세종대왕 흐뭇하시겠네

서천군 마산면 벽오리, 박대수 이장의 '농촌 살리기 프로젝트'

등록 2012.07.05 16:52수정 2012.07.0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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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천군 마산면 벽오리 박대수 이장. 40살 젊은 나이에 이장이 된 박대수씨. 웃는 형태 따라 자리 잡힌 주름이 마을이장님 아니랄까봐 순수하고 소탈하다.

서천군 마산면 벽오리 박대수 이장. 40살 젊은 나이에 이장이 된 박대수씨. 웃는 형태 따라 자리 잡힌 주름이 마을이장님 아니랄까봐 순수하고 소탈하다. ⓒ 박영미


유난히 하얀 치아. 건치라서가 아니다. 검게 그을린 피부때문에 상대적으로 하얗게 보이는 것이다. 


"농부가 하얄 수 있가뇨. 농부는 태양과 친구가 돼야 한답니다. 허허."

가뭄이 계속되는 지난 달 21일. 서천군 마산면 벽오리 이장 박대수(40)씨를 만났다. 오후 2시경. 한창 일을 하다 나온 그는 손에 흙이 그득한 채 기자를 맞았다. 그 와중에 피로회복제까지 챙겨 오셨다. 마을 초입, 나무그늘 아래 평상으로 안내한 그는 굵은 땀방울을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농사일이라는 게 해도 해도 끝이 안 보여요. 일 벌려놓고 허겁지겁 왔네요. 말주변이 없어서 대답이나 잘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우리 농촌, 우리 농부들 널리 알려준다니 고마운 마음에 한 걸음에 달려왔습니다. 허허."

웃는 형태 따라 자리 잡힌 주름이 마을이장님 아니랄까봐 순수하고 소탈하다. 나무그늘 아래 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그가 사랑하는 농촌, 그가 살리려는 농촌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똑같은 농사일 지겹더라고요... 자연농업 다짐했죠"


이장직을 맡은 지 햇수로 5년. 아시다시피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없다보니 그가 이장이 된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21호 가구에 총 4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사는 이곳은 고령화에 진입한 지 오래다.

"저희 어렸을 때 부모님한테 항상 들었던 말이 '농사짓지 말라'였어요. 당신처럼 고생하지 말라는 의미겠죠. 그래서 다들 떠났습니다. 2남2녀 중 막내였던 저도 서울로 떠난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6년간 살았는데 어머니가 차려준 밥맛이 너무 그리워 어느 날 시골집에 내려왔죠. 어느 정도 쉬고 올라가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크게 아프셨어요. 얼마 있다 어머니도 아프시고… 연이어 사건사고가 터지면서 농사일을 대신 봐주던 게 아예 이곳에 정착하게 됐죠. 생각해보면 부모님 의중에 자식하고 같이 살고픈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 마음을 읽고 이곳에 머물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우연처럼, 운명처럼 농사꾼이 된 그는 35살, 젊은 나이에 이장이 돼 마을에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었다. 농촌을 살리기 위한 나름의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을 거들었고, 정식으로 한 지도 언 14년. 해마다 똑같이 반복되는 농사일이 지겹더라고요. 관행농업에서 탈피, 자연농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더불어 찾아오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체험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농촌을 살리기 위한 그의 노력은 마을 입구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엔 벽오리 친환경농산물 판매장이 설치돼 있다. 이곳은 무인판매대로, 주인 없이 운영된다. 매일 아침 부녀회에서 내놓은 농산물들을 지나가는 손님들이 양심껏 사가는 것이다. 차량이 드문드문 지나가는 곳이지만 재작년부터 입소문이 나 적지 않게 농산물이 소진되고 있다. 인적 없는 농촌에 활기를 띠게 한 대표적인 사업이 아닐 수 없다.

a  벽오리 친환경 농산물 판매장. 마을 입구 반대편에 마련된 이 판매장은 주인없이 운영된다.

벽오리 친환경 농산물 판매장. 마을 입구 반대편에 마련된 이 판매장은 주인없이 운영된다. ⓒ 박영미


a  무인판매대에 판매되는 농산물. 각각의 종류별로 농산물의 가격이 책정돼 있다. 손님은 양심껏 가격을 지불하면 된다.

무인판매대에 판매되는 농산물. 각각의 종류별로 농산물의 가격이 책정돼 있다. 손님은 양심껏 가격을 지불하면 된다. ⓒ 박영미


또 다른 대표적인 사업은 한글텃밭이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 한글 모양대로 조성된 이 텃밭에는 소규모지만 다양한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단호박, 토마토, 상추, 오이, 가지, 청양고추, 꽈리고추, 아욱, 파프리카, 참외, 열무, 양배추, 양상추, 치커리뿐만 아니라 몇몇 작물의 토종씨앗을 어렵게 구해 그것 역시 키우고 있다. 농작물의 습성을 관찰하고 거기에 맞는 환경을 조성하며 농작물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자연농업을 추구하는 한글텃밭은 아이들 교육체험의 장으로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한글텃밭이라 이름 지은 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단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나라의 내실을 기했듯, 농촌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길 바라며 한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됐습니다. 지금의 농촌은 농부가 없고, 학교가 없어지고, 슈퍼가 문 닿고, 사람들도 찾지 않는 곳이 됐습니다. 농업이 죽으면 우리의 생명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데요. 그래서 한글을 아는 어린 아이 때부터 농민들은 굉장히 소중한 존재고,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란 걸 알리고 싶더라고요. 이를 통해 근본적으론 농민의 사회적 지위가 조금이라도 올라갔으면 하면 바람입니다."

a  친환경 농산물이 자라는 한글텃밭. 한글 모양으로 텃밭을 조성했다. 이곳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친환경 농산물이 자라는 한글텃밭. 한글 모양으로 텃밭을 조성했다. 이곳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 박영미


"농촌과 도시가 신뢰하는 행복한 사회를 꿈꿔요"

최근 진행한 농촌체험프로그램에서도 그의 활약은 빛난다. 단순한 결과물 위주의 체험프로그램이 아닌 아이들의 기억 속에 농촌이라는 곳이 즐겁고 재밌으며 아름답고 소중한 곳이라는 걸 느끼게 하기 위해 다음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모과나무 근처에 사는 할머니댁에 가서 웃겨 드리기, 한글텃밭에 가서 토마토 수확하기, 비닐하우스 온도계에서 온도 확인하기, 나무그늘에서 줄넘기하기 등 마을 전체를 돌아보며 단계별로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차례 치러져 보완할 점이 많지만 찾아오는 농촌을 만들기 위한 박대수 이장의 계획엔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한 듯했다. 

박 이장의 농촌 살리기 프로젝트는 자신의 농업에도 반영됐다. 2년 전, 도시와 농촌의 협업을 만드는 사업적 기업 '도농더하기'에서 활동하며 자연양계를 시작한 것.

"옛날 우리 할머니들이 마당 흙바닥에 자유로이 풀어놓고 기르시던 양계방식 그대로 닭과 교감하고 습성을 존중하여 닭이 가진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게 자연양계의 기본 마인드라 할 수 있습니다."

소농에서 정성들여 키운 닭. 그 닭이 낳은 달걀 이름은 소소란이다. 소소란은 서천, 부여, 천안, 홍성의 6농가가 참여하는 자연양계로 옛 방식 그대로 소량생산만을 고집한 100% 자연유정란이다. 사람의 입장이 아닌 닭의 입장에서 설계했다는 목조 계사는 전국 최초를 자랑하며, 우리 흙, 우리 풀, 우리 밀 등 오직 우리 것으로 만든 천연사료는 우리 몸에 약이 되는 건강한 달걀을 낳는다.

a  사람의 입장이 아닌 닭의 입장에서 설계된 자연양계장. 박 이장은 부화장을 열때도 닭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크를 한다.

사람의 입장이 아닌 닭의 입장에서 설계된 자연양계장. 박 이장은 부화장을 열때도 닭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크를 한다. ⓒ 박영미


a  소농에서 정성들여 키운 소중한 달걀이란 뜻의 소소란.

소농에서 정성들여 키운 소중한 달걀이란 뜻의 소소란. ⓒ 박영미


"아기가 건강하려면 엄마가 건강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달걀의 본질은 암탉이 결정짓습니다. 습성대로 건강하게 자란 닭은 생명력 넘치는 건강한 달걀을 낳을 수 있습니다. 또한 건강한 달걀은 우리를 건강하게 해줍니다. 소소란은 농촌의 따뜻한 진심이 가득한 도시의 식탁을 꿈꿉니다. 자연과 농민, 농민과 농민의 연대로 얻은 건강한 달걀로 농촌과 도시가 서로 신뢰하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농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사회입니다."

올해 2월에 태어난 늦둥이까지 총 4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박대수 이장. 그가 농촌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농부라는 직업이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아버지이고 싶기 때문이다. 박대수 이장의 농촌 살리기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이다. '농민이 대접하는 세상'을 위해 농촌의 지금은 분주하다. 
#박대수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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