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금 대출 독촉장
김준수
월 170만 원 이상 받던 회사를 그만두고, 틈틈이 알바를 해 오며 원하는 공부와 글쓰기를 할 수 있기에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5월에 학자금 대출 연체이자 독촉장이 날아들었기 때문입니다.
창업과 실패 등등으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고, 창업으로 쌓인 빚을 갚기에도 벅찬 생활이었습니다. 그게 학자금 대출 상환을 미룬 변명은 안 되겠죠.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레 날아든 독촉장에는 '원금과 이자를 포함한 금액을 상환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 하겠다'는 무서운 단어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흔히들 하는 표현으로 '멘붕(멘탈붕괴)'였습니다. 겨우 빚들을 정리하고 내 생활을 찾는 가 했는데, 또 다시 빚더미 위에 앉게 된 것입니다. 학자금 대출 상환을 위해 가진 돈을 모두 송금해도 부족했습니다. 현재 제 통장 잔고는 만 원입니다. 단기로 하던 알바는 종료된 상태라 현재 무직입니다. 마냥 놀 수 없기에 육체노동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삶을 살아오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을 두고, 다른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모두 제 책임이겠죠. 제가 경솔했고, 부주의했고, 바보 같을 정도로 지나치게 세상물정을 모르고 순진했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사정이 이리 어렵게 된 것은 순전히 학자금 때문만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등록금이 현 세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큰 시름이 되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도 그 등록금 때문에 퇴학처리를 당하고, 빚에 허덕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대학 졸업은 필수라는 사회, 빚 되어 쌓이는 대학등록금대한민국의 최고 재산은 '인재'라고 말하기도 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은 우수한 두뇌 양성이라며, 너도나도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치열한 교육체제 속에 뛰어들어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풍토가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해 왔습니다.
그 사이 대학교 등록금은 매년 치솟았습니다. 교육 현실이나 교육의 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말이죠. 통계상 대한민국의 대학 등록금 인상률은 매년 10%를 웃돌면서 세계 1위, 등록금이 많은 것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
관련기사 보기)
그 사이 서민들은 오르는 물가와 대학 등록금에 힘겨워했습니다. 이를 반영한 듯이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반값등록금을 공약으로 선언합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2012년 대한민국에서 반값등록금 공약은 지켜지질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반값등록금이 시행 중인 대학은 '서울시립대' 딱 한 곳이고, 이것은 새누리당이 아닌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킨 공약 덕분입니다.
대학생들이 집회에 나서서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 촉구'를 요구하자, 정치인들은 '재정 확보가 어렵다', '대학 졸업자가 지나치게 많은 과잉학력이 문제', '꼭 대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취업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갑자기 딴소리합니다. 정작 반값등록금 공약을 걸었던 정치인들마저 이런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이제와서 '등록금 타령하지 말고 대학교에 가겠다는 욕심을 버려라'는 식입니다.
재정 확보가 정말 어려운가요? 충분한 검토 기간을 거치지 않아 실효성이 미지수였던 4대강 사업에는 거침없이 수십조 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던 정부입니다. 결국, 반값등록금을 위한 예산이 없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지금 당장 반값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힘들다면, 몇 년에 걸쳐서 점차 10%, 20%씩이라도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4대강 등 다른 정책들은 날치기 법안통과 등 불도저 같이 밀어붙이던 것과 다르게, 반값등록금 정책은 시도 자체를 꺼리는 듯이 소극적인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애초에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 자체가 진정성이 없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부패한다지만, 정치인의 이런 빈말뿐인 공약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합니다.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 아니 최소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이라도 하는 정치인을 보고 싶은 것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정말 큰 욕심에 불과한 걸까요?
청년들에게 희망 되찾아주기, 반값등록금부터 시작해야저는 대학교에 다시 입학할 생각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전히 제 형편은 대학교를 다니기에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또, 대학교 교육을 받기보다 다른 길을 찾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값등록금 공약이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제가 직접적인 혜택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반값등록금 공약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 청년들은 꿈을 잃고, 그저 일자리를 위한 무한경쟁과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젊은 청춘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대학교 등록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졸업 이후에 수천만 원의 빚을 떠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청년들에게는 '등록금 대출 청산'이라는 과제가 최우선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에게조차 미래가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희망을 찾아주려면, 사회생활을 빚쟁이 인생에서 시작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반값등록금 공약의 실행은 대학생이라는 일부 계층만을 위한 일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이 등록금과 대출의 부담에서 벗어나면 소비를 더욱 활발히 할 수도 있을 테고, 이는 내수 경제에도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청년들이 취업만을 위해 달려가는 소득 없는 경주를 멈출 수 있게 된다면, 더 창의적인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합니다. 정치인의 작은 노력이 법과 정책을 만들고, 그것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가게 하니까요. 그런 정치인이 이제 청년들의 세상을 바꾸는 것을 시작하면 어떨까요. 그것을 위해서, 저는 반드시 반값등록금 공약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감히 주장합니다. 지금의 어딘가 침체한 듯한 대한민국, 왠지 모르게 우울한 부분을 감출 수 없는 현실을 바꾸어 나가려면 청년들에게 다시 희망적인 삶을 되찾아 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휴학하려면 등록금 내라"...돈없어 휴학하는데도?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