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8월 3일 쌍용자동차 투쟁 당시 도장 공장을 점거 중인 노조원들 위로 경찰헬기가 지나고 있다.
유성호
[2]또다른 쌍용차 노동자 한용구(가명)씨와 정한 '접선(?)'은 오후 9시30분이었다. 그의 평일 퇴근 시간이다. 지난 12일 그를 만난 곳은 회사 주변의 24시간 패스트푸드점이었다. 한씨는 평일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일을 한다. 그가 일하는 곳은 렉스턴, 코란도 스포츠 등을 생산하는 '3라인'이다.
3라인 차종은 시장에서 반응이 괜찮은 편이다. 최근에는 렉스턴 더블유(W)까지 만든다. 이 때문에 이곳 직원들은 최근 2년여 동안 매주 63시간이라는 살인적인 강도로 일해 왔다. 가족과의 대화는커녕 제 몸 챙기기에도 빠듯하다. 한씨는 "회사 눈치보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노동강도는 전혀 줄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평일에 9시에 끝나니까 집에 가면 10시 되죠. 주말에도 8시간씩 특근해요. 집에 가면 피곤해서 뭐 누구 만나고 싶겠어요? 일하는 사람들이 피곤에 쩔어 있어요."한씨 역시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엄청난 노동강도 속에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기자와 만나 이야기하는 것조차 그에겐 엄청난 시간인 셈이었다. 다시 그의 말을 옮겨본다.
"8시 반 출근, 11시 퇴근... 주 63시간 살인적인 노동" "제조나 품질 같은 부서에선 (하루에) 13시간씩 일할 때도 있어요. 라인에서 차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침 8시반에 나와서 밤 11시까지 서 있는 게 말이 안되죠. 차 하루 이틀만 만들 것도 아니잖아요. 근데 마땅히 방법이 없으니까 그냥 하고 있는 거에요." 이처럼 비정상적인 노동강도는 편성효율 등 지표에서도 나타난다. 편성효율은 노동자에게 주어진 시간 대비 실제 작업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편성효율이 높으면 여유 인력이 적다는 의미다. 쌍용차는 편성효율이 파업 이전 60% 수준에서 85%까지 올랐다.
예를 들어 자동차 1대당 3분의 작업시간이 주어지는 작업장에서 편성효율이 60%라면 해당 라인의 노동자는 108초 동안 일하고 72초는 쉬게 된다. 반면 85%까지 편성효율을 올리면 노동자의 쉬는 시간은 27초로 줄어든다. 한 시간에 작업을 안 하는 시간이 9분에 불과한 셈이다.
직원들이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회사 안에 설치된 한방병원이나 물리치료실은 항상 만원이다. 한씨는 "금요일에 예약해야 월요일이나 화요일쯤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서 "몸이 안 좋은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나마 이런 현상도 숙련승급제가 적용되면서 나아진 것이다. 숙련승급제란 관리직 간부가 별도의 진급 평가를 받지 않고 별다른 징계 사유가 없으면 연차에 따라 자동으로 진급이 되는 제도다. 그 전에는 사내 물리치료실에 방문기록이 남았기 때문에 관리직 간부 눈치 보느라 찾는 사람도 드물었다는 게 한씨의 설명이다.
한씨는 이런 문제의 원인으로 회사의 '이상한' 인력 운용을 꼽았다. 현재 쌍용차 공장의 특징은 만드는 차종 별로 노동강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인기가 많은 SUV를 집중 생산하는 3라인은 130%에 가까운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코란도C를 만드는 1라인은 하루 8시간의 정규 노동시간 이외에도 간간이 잔업과 특근 근무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체어맨, 로디우스를 만드는 2라인은 하루에 3시간만 일한다. 차 주문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