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속리산
이상기
소년은 뉘 집의 자제인가? 少年誰氏子시가 마치 이장군 같네 그려. 詩似李將軍어느 날 다시 볼까 해서 何日重相見쓸데없이 북쪽 구름만 바라보네. 徒勞望北雲성운은 1579년 세상을 떠나 북실 고개에 묻혔다. 그 때 제자인 임제는 함경도 고산도찰방과 병마평사를 지내고 있었다. 나중에 스승의 부고를 전해 듣고는 대곡선생을 기리는 제문을 짓는다. 그런데 이 글이 정말 명문이다. 그는 선생을 성인과 군자에 비유하고, 백이, 유하혜, 허유, 소부와 비교했다. 그리고 꽃으로 말하면 매화고, 닭으로 말하면 학이라고 비유했다.
"아아! 슬프도다. 북쪽 구름에 취해 시로 반갑게 맞아주시던 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밝은 달처럼 맑은 시는 영결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상 아래에서 다시 절 올릴 일도 없어졌고, 고갯마루에서 마음을 주고받는 일도 찾을 길 없게 되었습니다. 우주는 적막하고 밤은 침침하니, 차후로 이 세상에서 제 마음 알아줄 이 없을 것입니다. 흠향하소서! (嗚呼哀哉 北雲醉詠 難忘下榻之時 皓月淸篇 還成求訣之詞 床下之拜不再 半嶺之嘯難尋 宇宙寂寥 脩夜沈沈 此後人世 斷無知音 尙饗)" 이러한 글은 성운의 문집인 <대곡집(大谷集)>과 임제의 문집인 <임백호집(林白湖集)>에 들어 있다. 대곡선생 문집은 그의 처조카인 김가기가 1596년 간행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603년 김가기의 아들인 김덕민이 <대곡집(大谷集)>이라는 이름으로 간행했다. 그리고 백호 임제의 문집은 1617년 사촌동생인 임서(林㥠)가 간행했고, 1621년 이항복과 신흠의 서(序)가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