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민주화가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과 불공정 경쟁 등 신자유주의의 병폐를 극복하는 것이 시대정신이 되고 있고, 여야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박근혜 의원과 문재인 의원 모두 이를 강조하면서도, 서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후보가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란 '경제력 남용'을 막는 것이다. 이는 재벌과 대기업에 의해 자행되는 독과점과 횡포, 즉 골목상권 등 소상공인 영역의 무차별적 잠식, 납품단가 후려치기, 일감 몰아주기 등에 제재를 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지원함으로써 공정한 시장 질서를 유도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공정거래법과 공정거래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 후보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경제력 집중'을 문제 삼는다. 이는 출자 총액 제한제 재도입, 기업 간 순환출자금지, 지주회사 제도 강화, 금산분리 강화 등 재벌과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자체를 막겠다는 것으로 박 후보의 입장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박 후보가 지적하는 '경제적 남용'은 근원적으로 '경제력 집중'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지 않고, 경제력 남용을 막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에 대한 두 후보 간의 차별성은 그렇게 큰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50보 100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는 경제민주화를 기업과 기업 간의 관계에서만 볼 뿐, 여타의 관계를 도외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두 후보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동일한 패러다임을 전제한다.
경제민주화란 말 그대로 경제적 영역에 민주주의 원칙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경제민주화란 모든 경제주체 내지 시장 참여자들이 예속과 지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존재로서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원칙이란 모든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권자이자, 주권자라는 점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은 돈이 많든, 적든 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1표만을 행사함으로써 동등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경제적 영역에서도 모든 국민이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2항에서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박 후보와 문 후보가 말하는 경제력 남용 방지나, 경제력 집중 을 통한 시장 지배 방지는 모두 헌법적 조항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한 것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이다. 이는 비단 기업과 기업 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기업과 노동자, 그리고 기업과 소비자 간의 관계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기업과 노동자, 기업과 소비자 간의 관계에서도 민주화가 필요하다면 이는 무엇보다도 '기업의 경제력 남용'이나, '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아니라, '기업의 권력화'를 막고, 경제주체간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함이다.
기업이 권력화 될 수 있는 이유는 기업 소유주나, 이들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최고경영자가 기업의 의사결정권을 장악하고, 이러한 힘을 토대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막대한 부분의 세금과 고용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의 재정, 조세, 노동, 복지, 물가 등 다양한 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더구나 기업은 막대한 자금을 이용하여 정치적 선전 기제를 장악하고, 정치 지도자에 대한 접근성에서 우위를 점한다.
이렇게 기업이 권력화 될 때 국가 정책은 물론 사회 전체가 기업하기에 유리한 조건으로 재 조직화 되며, 결국 시장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한 것은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허튼 소리가 된 것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이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한다. 기존 정치질서가 국민을 대표하지 못함으로써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한다. 기존 정치질서가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보수특권층만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또한 기업이익 대변자가 정치엘리트와 특권층을 형성함으로써 민주주의 절차를 장악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말해주는 것은, 기업이 권력화 됨으로써 시장의 권력을 정치적 영역으로 확대했다는 것, 따라서 시장에서의 불평등이 정치적 평등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 결국 시장이 민주주의 자체를 식민지화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권력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가지 축에서의 견제이다. 즉 기업 내부에서 노동자들의 경영참여를 확대함으로써, 그리고 기업 외부에서 소비자 주권이 강화됨으로써 오직 기업소유주의 이익만을 위해 봉사하는 기업 최고경영층의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적 영역에서 각 주체가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후보는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을 되찾아 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력 집중 완화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기업과 노동자, 기업과 소비자 간의 권력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시장에 의해 식민화된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가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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