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산성의 여러갈래 숲길 중 한갈래 숲길.2012.7.23
김현자
부소산성의 숲은 넓다. 동행한 이주복씨에 의하면 4~5시간은 가져야 부소산성의 숲길들을 모두 걸어볼 수 있다고 한다. 부소산성 숲에 있었던 시간은 두 시간쯤. 길이 끝나려나 싶으면 또 다른 길이 나타났는데, 길마다 걷는 느낌이 모두 달라 아직 가보지 못한 다른 숲길에 대한 호기심이 계속 일곤 했다.
어떤 길은 고운 흙길이어서 산책로 느낌이 나는가 하면 어떤 길은 거친 흙길로 되어 있어서 나지막한 뒷산 느낌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길마다 주로 많이 자라는 나무들이 달라 어떤 길에선 우리 토종소나무들을 많아 볼 수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숲에선 오래된 참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어떤 길에는 낮은 키의 나무들이 가지를 맞대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부소산성 숲의 저마다 다른 여러 갈래의 길을 걷는 동안 내가 만났던 산성들과 그 산성의 성곽을 따라 걷던 장면들이 문득문득 생각나곤 했다. 북한산성도 남한산성도, 아차산과 인왕산의 성곽들도 산의 중턱이나 능선을 따라 있다. 등산배낭을 메고 등산복을 갖춰 입고 산행을 해야 만날 수 있는.
이들 성곽들을 따라 걸은 적이 많고, 산행 중 이들 성곽의 일부를 만날 때도 많았다. 이런지라 부소산성 숲을 직접 만나기 전까진 이미 만났던 산성들과 비슷하리라 생각했다(숲을 걷는 동안 나의 등산복차림이 얼마나 억울하던지. 나무들이 내뿜는 우리 몸에 좋은 성분들이 피부로도 흡수된다는데 말이다).
앞서 잠깐 언급한 대로 부소산성 숲은 산성의 느낌이 거의 없었다. 곡식이나 무기들을 보관해두었다는 군창지를 보지 못했거나 설명을 통해 산성이었음을 전해듣지 못했다면 산성이라고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걷기 편한 옷과 신발로 언제든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참을 걸어도 지루하기는커녕 집에서 너무 늦게 출발해 오후에 숲에 깃들였음이 자꾸 후회되고 아쉽기만 했다. 그리고 계절마다 부소산성 숲에 깃들여 계절 따라 변하는 모습을 느끼고 싶단 생각만 자꾸 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이 들면 들수록 부소산성 숲 가까이에 살면서 수시로 깃들일 수 있는 부여 사람들이 자꾸 부러워지고 있었다.
폭염 속 산책,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사자루를 뒤로 한 채 걷다가 궁녀사에 잠깐 들러 만난 길은 옛 백제 왕자들의 산책로였다는 '태자골 숲길'. 부소산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많이 알려진 길이란다. 벽돌이나 돌을 깐 길들과 달리 고운 흙으로 된 길인데다가, 태자골 숲길 설명문에 '맨발로 걸어보며 백제의 지혜와 기를 받을 수 있는 숲길'이란 설명 때문인지 맨발로 걷는 사람들도 보였다.
부소산성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부소산문과 태자골 숲길 사이에는 부여 사람들에게 성왕만큼이나 유명한 백제의 삼충신(성충, 흥수, 계백)을 모신 삼충사(충남 문화재자료 제115호)란 사당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삼충사 자리에 신궁을 세우려고 터까지 닦았는데, 해방이 되면서 자연히 무산, 1957년에 백제의 충신들을 기리는 지금의 사당을 세웠단다.
참고로 올해로 제58회인 백제문화제(2012.9.29~10.7)는 1954년에 삼충신을 기리고 추모하는 축제(삼충제)로 시작, 1966년에 지금과 같은 이름의 축제가 되었다고 한다. 삼충사는 외삼문과 내삼문, 삼충신의 초상을 모신 사당으로 되어 있는데, 외삼문 앞에는 누구나 문화해설을 도움 받을 수 있는 문화해설사가 상주하고 있다.
그날 만난 문화해설사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 남성과 결혼해 부여에서 17년째 살고 있다는, 일본인 느낌을 전혀 느낄 수 없던 여성이었다. 그녀에 의하면 일본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우리 역사 인물은 백제 성왕과 왕인박사와 삼충신. 백제를 일본 문화의 고향으로 여기는 일본인들이 많아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인 부여를 찾는 단체관광객들이 많다고 한다.
그녀는 우리나라에 와서, 설명하는 글자만 다를 뿐 우리나라 문화재들과 일본 박물관 등에서 만난 문화재들이 너무 똑같다는 점에 놀라웠단다. 외에도 부소산성 숲에는 백제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가 많아 자연도 느끼고 역사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부소산성에 갔던 날은 폭염이 시작된 지난 23일, 게다가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대인 1시 50분 무렵부터 4시 무렵까지였다. 그럼에도 부소산성 숲에 있는 동안 더위를 거의 잊었다. 5월 더운 어느 날 산행할 때 느꼈던 정도나 느낀 것 같다. 매일 내일은 오늘보다 더 더운 날이 예고되는 요즘, 그날보다 훨씬 많은 부여 사람들이 부소산성 숲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나무들 때문인지 워낙 시원한데다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