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홍 작가 "MBC가 <피디수첩> PD에 이어 작가까지 자르는 이유는 곧 방송의 기반을 송두리째 없애려는 것이다"
권우성
- 메인작가 전원을 해고한 이유는 무엇일까."방송은 장비가 만드는 게 아니다. 사람이 만든다. 피디와 작가들은 축적된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준다. 그것들이 쌓여 방송의 역량이 된다. <피디수첩>이 대한민국 탐사보도 프로그램으로 우뚝 설 수 있던 것도 축적된 노하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그동안 공들여 키운 인프라를 한꺼번에 없애려는 것이다.
누군가 미워서 자를 수는 있다. 그런데 12년차인 나부터 4년차 작가까지 싹 다 자르는 건 노하우를 뿌리째 긁어내려는 의도라고 본다. 비판정신, 제작, 취재, 섭외, 구성, 대본 등의 노하우를 한꺼번에 날려버리고 엔터테인먼트 형식의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것이다."
- 전원해고 사태가 일어나기 전 MBC의 압박은 없었나."이미 2년 전 윤길용 당시 시사교양국장 체제 때부터 압박을 느껴왔다. 검찰 스폰서, 4대강 등의 아이템을 다루면서 미움을 받기 시작한 것 같다. 이런 적도 있다. 시사교양국이 개편돼 <피디수첩>이 시사제작국 안으로 들어간 이후, 당시 'BBK 가짜편지' 관련 아이템을 준비 중이었다. 제작PD가 당시 팀장에게 보고했는데 재미없다며 거절했다. 그리고는 내게 와서 '이 아이템 당신이 냈지'라며 눈을 흘겼다. 당황했다. 예전 부장들은 특종성 아이템을 내면 예뻐했다."
- 왜 하필 MBC는 파업이 끝난 지금 메인작가 전원 교체를 단행했을까."타이밍상 누군가의 기분을 맞춰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김재철 사장이 재임용을 앞두고 <피디수첩>만은 죽여주겠다는 걸 권력층에 보여주려 했다고 생각한다. 배연규 팀장은 시청률이 안 나와서 작가들을 잘랐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템 통제 속에서도 시청률이 잘 나온 작가가 있다. 그렇다면 그 작가는 자르면 안 된다. 왜 비밀작전 하듯이 전원을 자르나. 군사작전 하듯이 한꺼번에 쓸어버린 건 누군가의 지시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 <피디수첩> 작가들은 MBC 노조 파업을 지지했는지 궁금하다. 김재철 사장 재임 이후 공정방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동의하나."그렇다. 김 사장 재임 이후 최승호·오행운 PD 등 기라성 같은 제작진들이 다 잘렸다. 아이템 통제도 늘었다. 간부들 마음에 들지 않는 프로그램은 절대 방송 못했다. 이 때문에 PD들이 간부들과 엄청나게 싸웠다. 징계도 많이 당하지 않았나. <피디수첩>의 경우 파업 이후에도 PD들이 징계를 대거 받았다. 10명 중 6명이 사무실에 못 나왔다. '가택 대기발령'을 받기도 했다. 집에서 나오지 말라는 징계다. 여기가 미얀마인가.
이후 시용PD들이 고용됐다. 5명 중 3명이 <피디수첩>으로 왔다. 이건 우리 방송 보고 죽으라는 거다. <피디수첩>은 사회문제의 핵심을 다루기 때문에 그만한 역량과 철학을 지닌 사람들이 와야 한다. 그런데 VJ 하던 사람들을 집어넣은 것이다."
"방송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 만든다... 전원 복귀가 목표"- 작가들도 프로그램 때문에 간부들과 마찰을 겪었나."엄청 싸웠다. 한미동맹, 남북문제, 노동문제 등 정부에 부담을 주는 아이템은 다 거절했다. 재미없다는 게 이유였다. 간부들은 '시청자가 외면한다, 내용이 진부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런 아이템을 방송해서 여태 시청자들에게 지지받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작가들은 아이템을 포기하지 않았다. 2011년에는 한진중공업 사태 관련 아이템을 냈는데 간부들이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다시 냈다. 다음 주에 내용만 살짝 바꿔 가지고 갔다. 그렇게 몇 주를 반복하면 '나한테 대드나'라고 말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