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왕 중에도 아내에게 매 맞는 이가 있었으니...

[서평] 불륜으로 치달은 사랑, 역사를 뒤흔들다 <고려왕가 스캔들>

등록 2012.08.01 13:45수정 2012.08.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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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현종으로 즉위한 대량원군이 생명의 은인인 진관대사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으로 세운 서울 삼각산 진관사 경내

현종으로 즉위한 대량원군이 생명의 은인인 진관대사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으로 세운 서울 삼각산 진관사 경내 ⓒ 임윤수


"헌정왕후와 아들 왕순,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촌수를 따져보면 복잡하다 못해 골치가 아플 정도이다. 태조 왕건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손자와 손녀가 된다. 또 헌정왕후의 입장에선 왕순이 아들이자 사촌동생이 되고 왕순의 입장에서는 현정왕후가 어머니이자 사촌누이가 되는 셈이다."(<고려왕가 스캔들> 28쪽)

조선시대 유학의 질서나 예법을 숭상하는 양반의 입장에서 보면 고려의 왕들 중 몇몇은 개나 돼지처럼 보였을 겁니다. 아들이 사촌동생이 되고, 어머니가 사촌누이가 되는 촌수는 개나 돼지와 같은 '금수'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얽히고설킨 고려 왕가의 인척 관계, 그리고 스캔들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한 번 결혼을 하면 설사 남편이 죽더라도 한평생을 수절하며 그 집에서 살아야 했지만, 고려의 여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려시대는 남편이 죽으면 자유롭게 재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의 여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왕비가 됐던 여인들은 평생을 혼자 살아야 했고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사회와 법이 그렇다 해도 왕의 여인들 역시 여자이며 인간이기에 음욕을 극복하지 못하고 일탈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a  <고려왕가 스캔들> 표지

<고려왕가 스캔들> 표지 ⓒ 미디어 현문

이경태가 쓰고 현문미디어가 펴낸 <고려왕가 스캔들>은 불륜의 주인공들로 고려사에 오른 왕과 왕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베개 밑으로 떨어진 이들 사이의 속삭임에서 뜻밖의 고려사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왕건은 부인을 무려 29명이나 뒀습니다. 왕건이 부인을 29명이나 두었다는 게 이야깃거리가 아니라 왕건의 후손인 고려의 왕과 왕비들이 벌인 불륜과 치정에 관한 이야기가 핵심이지요.

얽히고설키는 친인척 간의 근친상간은 물론, 궁노와의 사통도 벌어집니다. 이자겸은 인종의 외조부이자 장인이 되니 인종의 어머니와 아내는 자매가 됩니다. 게다가 이자겸의 셋째 딸과 넷째 딸은 인종의 아들인 예종의 아내가 되니 이들의 관계는 촌수로는 셈할 수 없고, 혈연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관계가 됩니다.


장경왕후는 손자뻘인 의종과 결혼하고, 지아비를 잃은 안정궁주는 악공 가영이와  욕망의 불꽃을 태웁니다. 아버지의 부인이었던 여자와 간음하고, 시숙인 남자를 유혹해 동침하고... 예나 지금이나 욕정에 불타는 남녀관계는 무모하리만큼 뜨겁고 질펀합니다. 절제되지 않는 게 일정한 선을 넘어선 남녀관계입니다.

왕건이 29명의 부인을 두고, 이자겸이 딸들을 한 남자와 결혼시킨 것처럼 고려 왕가의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관계를 맺은 것은 단지 육체적 쾌락을 좇기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남녀관계는 출세를 위한 도구이자 방편이기도 했습니다. 가문이 권력을 향유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기에 고려왕가의 스캔들에는 고려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몽둥이 든 공주, 왕을 후려치기 시작해...

"고려 국왕은 묘호에 '조(祖)'나 '종(宗)'을 사용할 수 없는 대신 '왕(王)'자를 붙여야 했고, 맨 앞에는 몽골에 충성을 맹세한다는 의미로 '충(忠)'를 넣어야만 했다. 몽골이 원종에게 내린 시호는 충경왕(忠敬王)이었다. 또 왕이 자신을 칭할 때의 호칭도 '짐'은 '고'나 '과인'으로 바뀌었고, '폐하'는 '전하'로 '태자'는 '세자'로 격하됐으며, 각종 관직명도 모두 격하됐다."(본문 194쪽)

"제국대장공주는 충렬왕을 노려보다가 말을 돌려 되돌아가려고 했다. 왕은 공주의 눈치만 살피다가 어쩔 수 없이 말에 올랐다. 우유부단한 왕의 행동에 화가 치미는지 공주가 갑자기 몽둥이를 주워서 왕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많은 대신과 시녀들 앞에서 고려의 국왕이 왕비에게 매를 맞는 꼴사나운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본문 203쪽)

a  고려 선종과 원신궁주에 얽힌 탄생설화가 담긴 경기도 파주 용미리 마애불

고려 선종과 원신궁주에 얽힌 탄생설화가 담긴 경기도 파주 용미리 마애불 ⓒ 임윤수


아내에게 매 맺는 남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얼마 전 들었습니다. 시대 탓이려니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아내에게 매를 맞는 남자는 고려의 왕 중에도 있었답니다. 부부싸움을 하다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폭력이 아니라 벌건 대낮, 대신과 시녀들이 보는 앞에서 몽둥이찜질을 당한 충렬왕의 비애는 고려의 아픔이며 우리 역사의 실상이기도 합니다.

고려는 묘호나 시호, 호칭조차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몽고의 지배를 받는 부마국이었습니다. 볼모가 돼 몽고에 잡혀간 세자, 몽고의 사위로 살아야 했던 고려의 왕들이 겪거나 감내해야 했던 시대적 상황이 고려 왕가의 스캔들 속에 아스라이 스며 있습니다.

공민왕은 미소년인 홍륜과 한안을 시켜 자신의 비(부인)인 익비와 간음케 하고는 그 광경을 몰래 훔쳐보며 쾌락을 느끼는 변태 성욕자로 그려졌습니다. 공민왕의 이런 변태적 성욕이야 말로 고려 왕가에서 발생한 스캔들 중의 스캔들이 아닐까 생각되기에 공민왕이 벌였던 변태적 행위는 독자의 읽을거리로 남겨둡니다.

덧붙이는 글 | <고려왕가 스캔들>(이경채 씀 | 현문미디어 | 2012.07 | 1만3000원)


덧붙이는 글 <고려왕가 스캔들>(이경채 씀 | 현문미디어 | 2012.07 | 1만3000원)

고려왕가 스캔들 - 불륜으로 치달은 사랑, 역사를 뒤흔들다

이경채 지음,
현문미디어, 2012


#고려왕가스캔들 #이경채 #현문미디어 #공민왕 #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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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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