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도 웃도는 더위에 해목산을 오르다

석실묘를 찾아 나선 길 더위도 잊겠네

등록 2012.08.04 16:40수정 2012.08.0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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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실묘 전경 고달사지 위 해목산 중턱에 있는 경기도 기념물 제198호 고려 석실묘
석실묘 전경고달사지 위 해목산 중턱에 있는 경기도 기념물 제198호 고려 석실묘하주성
▲ 석실묘 전경 고달사지 위 해목산 중턱에 있는 경기도 기념물 제198호 고려 석실묘 ⓒ 하주성

기온이 33도를 웃도는 날씨에 문화재 답사를 한다고 산을 오르는 행위는, 그야말로 제 정신이 아닌 행동이다. 그것도 무슨 돈벌이를 하는 것도 아닌데, 날이 좀 선선해 진 다음에 해도 될 텐데 말이다. 늘 새로운 것을 써야 하는 문화재 답사는, 웬만한 정성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연 8일째 찜통더위라는 8월 4일.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에 소재한 '고달사지'를 찾았다. 꼭 고달사를 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위 해목산 중턱에 있는 상교리 석실묘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경기도 기념물 제198호인 상교리 고려 석실묘는 고달사지 느티나무에서 800m 정도를 해목산으로 오르면 된다.

 

오르는 길 해목산 석실묘로 오르는 길은 100m 정도가 경사가 있는 비탈길이다.
오르는 길해목산 석실묘로 오르는 길은 100m 정도가 경사가 있는 비탈길이다.하주성
▲ 오르는 길 해목산 석실묘로 오르는 길은 100m 정도가 경사가 있는 비탈길이다. ⓒ 하주성

이 찜통더위에 미쳤군, 미쳤어

 

길을 걷다가 보니 옆으로 차들이 지나간다. 팍팍한 여름의 길은 차가 천천히 지나가도 뿌옇게 먼지가 인다. 그 또한 참기 힘든 일이다. 차 한 대가 지나가면서 소리가 들린다.

 

"이 찜통더위에 미쳤군, 미쳤어. 이런 날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니!"

 

하긴 내가 생각해도 그 말이 맞는 듯하다. 미치지 않고서야 33도가 넘었다는 시간에 멀지 않은 길이라고 해도,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산을 오를 생각을 하다니 말이다. 잘 정리가 된 고달사지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국보 제4호인 원종대사 승탑을 만날 수가 있다. 그 못미처 해목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석실묘 석실묘는 지하 층에 석실로 만든 현실을 조성하고, 위에는 방형의 이층 기단을 쌓았다
석실묘석실묘는 지하 층에 석실로 만든 현실을 조성하고, 위에는 방형의 이층 기단을 쌓았다하주성
▲ 석실묘 석실묘는 지하 층에 석실로 만든 현실을 조성하고, 위에는 방형의 이층 기단을 쌓았다 ⓒ 하주성

기단 여러 장의 돌로 이층으로 조성한 방형기단
기단여러 장의 돌로 이층으로 조성한 방형기단하주성
▲ 기단 여러 장의 돌로 이층으로 조성한 방형기단 ⓒ 하주성

안내판에는 '여주 상교리 고려 석실묘 500m'라고 적혀있다. 그동안 산으로 오르면서 이 500m에 대한 아픈 기억이 생겼다. 몇 곳의 문화재를 답사를 하다가, 500m 안내판을 보고 길을 나서 더위에 몇 번인가 탈진이 오는 낭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벌써 3번째 오르는 곳이다. 처음 100m 정도만 가파를 뿐, 그 다음부터는 평지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8월 복중에 오르는 길이다. 그리 만만치가 않다. 산을 오르면서 만난 나무들도 찜통더위에 지쳤는지, 모두 잎들이 기운 없이 늘어져 있다. 며칠만 이 더위가 계속되면 농작물에도 심각한 정도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한다.

 

주변 정리가 잘 되어있는 석실묘

 

석실에 도착하니 주변이 말끔히 정리가 되어있다. 세 번째 오른 석실묘이지만, 이렇게 말끔하게 정리가 된 모습은 처음이다. 사실은 며칠 전에 누군가 전화를 했다. '여주 고달사지 뒤편 석실묘에 잡풀이 자라 엉망이다'라고. 그래서 오른 해목산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떠나 이렇게 말끔하게 정리가 된 것을 보니, 이 더위에 오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석실 벽 석실의 벽은 원형으로 조성하였다
석실 벽석실의 벽은 원형으로 조성하였다하주성
▲ 석실 벽 석실의 벽은 원형으로 조성하였다 ⓒ 하주성

석실바닥 석실의 바닥은 흙으로 조성 하였다.
석실바닥석실의 바닥은 흙으로 조성 하였다. 하주성
▲ 석실바닥 석실의 바닥은 흙으로 조성 하였다. ⓒ 하주성

천정 석실의 천정은 두 장의 커다란 돌로 막았다
천정석실의 천정은 두 장의 커다란 돌로 막았다하주성
▲ 천정 석실의 천정은 두 장의 커다란 돌로 막았다 ⓒ 하주성

 

석실로 조성한 이 고분은 1983년 11월 ~12월에 한양대학교 박물관 발굴단에 의해서 완료가 되었다. 발굴 당시 상감청자 파편 등의 유물로 보아 고려 때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석실은 고려 때의 묘제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발굴 전에 석실의 기단부는 완전히 흙더미에 묻혀 있었다고 한다.

 

불탑의 기단을 연상케 하는 방향기단

 

석실의 지상 위에 쌓인 돌로 조성한 방향기단과, 그 밑에 연도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석실로 구분이 되어있다. 하부의 원형의 석실에는 연도가 달려 있고, 상부에는 방형의 이층으로 된 기단이 쌓여있어 '상방하원 석실묘'라는 명칭을 붙였다. 지하의 석실은 원형으로 돌 축대를 쌓고, 그 앞으로는 연도를 조성해 열쇠모양의 형태처럼 조성하였다.

 

연도 지하 석실의 입구는 양편에 돌을 쌓아 연도를 내었다
연도지하 석실의 입구는 양편에 돌을 쌓아 연도를 내었다하주성
▲ 연도 지하 석실의 입구는 양편에 돌을 쌓아 연도를 내었다 ⓒ 하주성

 

석실의 위편은 큰 돌 두 장을 놓아 석실을 덮고 있으며, 그 위에는 이층으로 제단 모양으로 된 기단이 있다. 1층 기단은 동서가 442em, 남북이 280cm, 높이가 46cm 정도의 장방형이고, 2층 기단은 그보다 조금 적지만 높이는 50cm 정도이다. 현실 벽의 높이는 167~175cm 정도이다.

 

고려 말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실묘는, 아래편에 잇는 고달사지로 미루어보아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석실 위에 돌탑처럼 방형기단을 조성한 듯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35로를 웃도는 날씨에 찾아간 상교리 고려 석실묘. 말끔하게 정리한 문화재의 주변이, 잠시 그 찜통더위를 잊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경기리포트와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고려 석실 #상방하원 석실묘 #고달사지 #해목산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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