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드라마 <골든타임> 한 장면 .
MBC
접수담당자는 예약없이 교수를 만나기는 힘들다고 했지만 기다렸다. 종일이 걸려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오빠는 임상실험 대상자가 되는 조건으로 일찍 입원할 수 있다고 했지만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는 실험 대상자가 된다는 사실에 불안했다.
6시간을 기다린 끝에 교수를 만났다. 의사는 어제 환자에게 설명했는데 왜 또 왔느냐고 했고 다른 얘기는 할 것이 없다고 했다. '이런 경우 1년을 본다'는 말을 서슴없이 뱉어냈다. 사무적이고 감정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이다.
소견서를 써줄테니 다른 병원에 가도 상관없다고도 했다. 오늘 하루 '100명 넘는 환자를 봤으며 제정신이 아니다'는 말을 덧붙였다. 종일을 기다려 사실을 확인했지만 마음만 더 무거웠다. '의사는 신'이 아닌 것을. 어이가 없었고 기분이 나빴다. 희망 따위는 애초에 버리라는 것이 의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일까.
수술받지 못한 채 임상 실험 기다리는 환자들사흘 뒤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임상 실험 대상자가 된다는 동의안에 사인을 하지 않았다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입원할 수 있는 날만을 기다려야 했다. 오빠는 조급했고 불안했을 것이다.
환자도 보호자도 병원 생활은 낯설었다. 똑같은 옷을 입은 암환자들이 링거를 꽂은 채 느리게 걷는 병원 복도의 무거운 공기는 내가 모르는 낯선 세계였다. 입원 후 삼일. 수술날짜가 잡혔다.
오빠는 개복을 했지만 수술을 받지 못했다. 임상 대상자 중 수술 후 화학요법과 그냥 화학요법, 두 그룹 중 그냥 화학요법 대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상태가 나쁘지 않으면 일주일이면 퇴원할 수 있지만 오빠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검은 변을 보고 검은 구토를 했고 헤모글로빈 수치는 13에서 8까지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고통을 느끼는 오빠를 보며 몇 번이고 간호사에게 말을 하고 의사를 찾았지만 조치는 없었다. 결국 밤이 돼서야 콧줄을 위로 삽입하고 산소 수치를 확인하는 기계를 달고 고통을 없애는 링거를 투입했다. 검은 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주치의는 개복 수술 후 일어날 수 있는 현상으로 보고 방치했던 것이다.
종일을 아프고 밤이 돼서야 소동을 벌이는 주치의나 의사들이 원망스러웠다. 주치의는 사과를 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오빠는 사흘이 넘도록 금식을 한 채 4시간마다 피를 뽑아 수치를 확인했다. 최악의 상황엔 수혈받을 준비를 하고선 말이다.
대학병원은 환자중심의 시스템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