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이 즐거운 아이들
서주
아이들은 또한 캠핑장 주변으로 드문드문 남아있던 사막의 여우발자국에 환호성을 지르며 언제쯤 여우를 볼 수 있을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워낙 여우의 발자국이 작아서 아이들이 아마도 사막의 여우를 강아지 정도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사막의 여우는 워낙 영리해 사람이 깨어있는 시각에는 잘 숨어있다가 새벽에서야 살금살금 텐트 주변으로 다가온다. 우리 중 여행객 한 분이 텐트 밖에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주무셨는데 아침에 깨어나서 여우가 다녀갔다며 우리에게 확인을 해주셨다. 아이들은 텐트 주변에 가득한 진짜 여우발자국에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다음날에는 이른 아침식사를 빵과 샐러드, 쨈, 치즈 그리고 커피 등의 음료로 간단히 마쳤다. 일행 중에 한국산 컵라면을 준비한 분들이 계셔서 한 젓가락씩 나눠먹는 재미도 있었다. 게다가 사방이 뻥 뚫린 사막 한가운데였던지라 김치를 내놓아도 누가 냄새난다고 뭐라 그러지도 않고, 장아찌를 내놓아도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모든 폐용기와 음식물쓰레기는 별도의 봉투에 담아서 지프에 실어야 한다.
아침식사 후에는 본격적인 사막사파리가 시작됐다. 백사막에있는 버섯바위 지역은 울퉁불퉁하면서도 길도 아닌 길을 질주하듯이 달려 우리를 환호하게 했다. 우리는 마치 거인국에간 소인국사람들이 된것도 같았고, 당장이라도 스타워즈 속의 외계인들과 맞닥뜨릴 것만 같기도 했다. 그리고는 지프기사에 따라서 고대 로마시대에 온천수가 나왔다는 한뼘짜리 오아시스로 데려가기도 하고, 천년 묵은 거대한 아카시아나무로 데려가기도 한다.
로만 오아시스에는 인근 오아시스에서 베두윈 젊은이들이 오토바이를 몰고 모여들어 아지트처럼 사용하고 있어서 관광용으로는 적당치 않아보였다. 정말 협소한 그늘 속에서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으니 그 모습을 들여다보려고 거기까지 간 것은 아니었는데 진심으로 미안했다고나 할까. 천년 아카시아는 어떤 긴 가지는 무겁고 늙어서 쿵 떨어져 고사했고 또 어떤 가지는 꿋꿋하게 견뎌 잎을 틔우고 나비를 불러모으고 있었다. 상상해보라.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사막에 아카시아나무 단 한 그루가 청청히그 숨결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버섯바위와 아카시아나무에서 한참을 달리면 조약돌보다도 작은 새까맣고 반들거리는 별사탕 모양의 돌들이 바닥에 가득 깔려있는 지역에 닿는다. 이른바 플라워 스톤이다. 일전에 돌을 연구하시는 지리학자분이 오신 적이 있는데 그분 말씀이 땅밑에 같은 성분의 암반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지상으로 올라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명색이 여행사 사장인 나는 열심히 따라적으며 새삼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함께 갔던 여행객들이 흑돌 별사탕을 주워담느라 여간 바쁘지가 않았다.
몇 해전만해도 급경사의 모래언덕을 곤두박질 치듯 지프로 달려가는 이벤트도 있었는데, 요즘 베두인들은 지프 절단난다고 한사코 손사래를 치기에 이제는 모래언덕은 그저 보는것으로 만족하기도 하고, 때로는 여행객들끼리 등산삼아 정상까지 걸어갔다 오기도 한다. 모래언덕이 곱고 누구도 아직 밟지 않은 곳이라면 단체 사진 배경으로는 딱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들이 남긴 발자국들이 저녁이면 모랫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또다시 '누구도 밟지 않은 절정의 배경'으로 돌아간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사막 사파리를 하는 내내 중요한 것은 화장실이 없다는 점이었다. 사막이니 당연히 공공시설이 있을 수 없다. 나무 그늘도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뭘 설치하기도 참 그렇다. 사막에서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아침식사를 마친 후 본격적인 사파리를 떠나기 직전. 여성은 여성끼리 남성은 남성끼리 높다랗고 굴곡이 심한 버섯바위 어디쯤을 택해 몰려가 일을 본다. 간혹 잘 숨었다고 숨었는데 머언 지평선 맞은 편에 또다른 캠핑족들이 이쪽을 향해 텐트를 치고 있다거나 하는 낭패한 경우를 당할 수도 있다. 사막은 참 다양한 추억을 많이도 만들어주는 곳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