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들어 강화된 분배확인에 지원을 받는 당사자들은 불쾌해한다.
서영준 화백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남쪽 민간단체들이 밀가루를 보내려고 할 때, 통일부에서는 적어도 세 군데 이상의 영·유아 시설에 직접 가서 분배현장을 꼭 확인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지원을 승인한다. 남쪽에서는 이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상식적인 일이다.
그러나 북한에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밀가루를 지원받는 지역의 인민위원회에서는 남한에서 보내주는 밀가루를 고마운 마음으로 받으려는 순간, 남쪽 단체의 분배 현장 확인 요청 앞에서 뜨악해한다. 남쪽 민간단체들이 왜 자신들을 믿지 못하는지, 영·유아 시설을 참관하겠다면 즐겁게 방문을 도와줄 수 있지만, 분배를 확인해야 한다니... '손님이 아니라 감시자 아니나?'며 '그렇게 못 믿겠으면 뭐 하러 지원은 했는지'라고 답답해한다.
그러니 당연히 분배 현장 방문에 고분고분 협조할 리가 없다. 북한 민화협 안내원들은 이 인민위원회 분들을 설득하는 데 아주 애를 먹는다. 그럴 때마다 안내원들은 남쪽의 요구라면 뭐든지 다해줘야 하느냐는 인민들의 항변을 받는다고 한다. 나는 민화협 분들로부터 남북화해와 협력을 위한 대북지원이 실제 북 주민들에게서 이렇게 남쪽을 오해하는 계기가 될까봐 더 전전긍긍 애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들은 바 있다.
이런 사례 말고도, 북의 민화협이 우리와 어떤 합의를 하고 나서 막상 북한의 내부에서 그 의미를 소통하는데 애를 먹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내가 좌충우돌 북한경험담에서도 이런 사례는 여러 번 언급했듯이 말이다. 적어도 아까 그 선배의 말처럼, 북한 민화협이 북한 정부 시책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는 사람들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가끔 남한의 국가보안법 재판에서 '북의 민화협 아무개가 공작원인데, 피고인 누구누구가 그 아무개와 접선해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식의 주장이 기소 내용에 포함될 때가 있다. 통일부의 승인을 다 받고 사후 보고서까지 다 올린 문제임에도 이런 식의 공소가 이뤄진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대부분 민화협 안내원이 공작원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는 재판결과가 나오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북한 민화협 당사자들은 우리에게 이런 반론을 한다.
"우리가 지령을 내린다고요? 오히려 우리를 배후 조종하는 것은 남쪽단체들 아닙니까? 총장 선생도 알다시피, 우리 민화협은 남쪽 단체들과 만날 때, 남쪽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느라 허리가 휠 지경입니다. 우리는 남측의 그 다양한 요구를 반영해 북 내부를 설득하느라 다리품 팔아가며 어렵게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우리가 남측 민간단체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측 민간단체가 우리 북 민화협을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진실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좀 이상하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우리 민간단체가 이렇게 북한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비록 '불편한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인정해주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블로그(http://blog.krhana.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이경 기자는 겨레하나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남북교류협력 전문단체,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시민단체 겨레하나입니다.
공유하기
"우리가 배후조종? 진짜 범인은 남쪽입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