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왜 허공을 가위질했을까?

시인 최기종 네 번째 시집 <나쁜 사과> 펴내

등록 2012.08.21 15:26수정 2012.08.2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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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시인 최기종 시인 최기종(56). 그가 네 번째 시집 <나쁜 사과>(시와산문사)를 펴냈다

시인 최기종 시인 최기종(56). 그가 네 번째 시집 <나쁜 사과>(시와산문사)를 펴냈다 ⓒ 이종찬

사과는
받지도 말고 먹지도 마라
아담이 받은 사과
낙원에서 쫓겨나게 했다.
백설공주가 먹은 사과
독이 있어서 죽을 뻔 했다.
친구에게 꼼수로 얻은 사과
속이 빠알게서 버렸다.

그런데 받아만 내는 사과도 있다.
그 나쁜 사과 때문에
사과들이 아우성이다. -37쪽, '나쁜 사과' 모두


목포작가회의(한국작가회의 목포지부) 회장을 맡은 시인 최기종(56). 그가 네 번째 시집 <나쁜 사과>(시와산문사)를 펴냈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이 세상 모순덩어리를 하나 둘 벗겨 낸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나쁜 사과 때문에" 좋은 "사과들이 아우성"치고 있는 기막힌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은 제1부 '촛불', 제2부 '읍마동 전설', 제3부 'WORK 비밀', 제4부 '일기예보' 등 모두 4부에 72편이 물대포나 철제곤봉이 아닌 촛불을 들고 우리 사회 곳곳에 드리워진 캄캄한 어둠을 태우고 있다. "어두운 밤의 갈기에 / 완전히 밀리고 절망할 때 / 새벽은 온다"(새벽은 온다), "바우가 깨어지는 감격으로 / 새벽은 온다"처럼.

'저 선을 넘으면', '염병허네', '희망버스를 타고서', '이 봄, 하나도 반갑지 않다', '촛불소녀', '바구미의 꿈', '너를 방면하다', '모래알' '귀' 연작 5편, '허공으로 가위질했다',   'WORK의 비밀', '아, 구럼비를 위하여', '강물아, 미안하다', '김준태가 준 콩알 하나', '물결이라는 것', '일기예보', '해창만 겨울' 등이 그 시편들.

시인 최기종은 '자서'에서 "요즘 나라 돌아가는 형편이 말이 아니다. '나쁜 사과'의 폐단을 어찌 막을 것인지 답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는 "뼛속까지 친미하고 뼛속까지 재벌 편이고 남북대화 단절시키고 사회 갈등 조장하고 4대강 파헤치고 노동자 농민 서민들 어렵게 만드는 장본인이 나서서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거야 적반하장이다. 이리 개념이 없으니 저잣거리의 사과들이 아우성칠 수밖에"라고 되짚는다. 그는 20일(월) 전화에서 "억새처럼 죽순처럼 불꽃처럼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쓰고 싶었다"며 "'좋은 사과'라면 모름지기 '모든 쇠붙이는 가라'고 외친 시인 신동엽처럼 비도덕에 단호히 손사래를 쳐야 한다. 그래야 착한 미래가 어제처럼 다가올 것"이라고 못 박았다.

작은 모래들도 저마다 고집이 있다


a 시인 최기종 네 번째 시집 <나쁜 사과> 그는 이번 시집에서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이 세상 모순덩어리를 하나 둘 벗겨낸다

시인 최기종 네 번째 시집 <나쁜 사과> 그는 이번 시집에서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이 세상 모순덩어리를 하나 둘 벗겨낸다 ⓒ 시와산문사

바닷가 모래알
그 폭신한 것이
각을 세우고
맨발을 자극한다.

작은 모래들도
저마다 고집이 있는 것일까
짓밟히고 밀리면서도
원각으로 치받는 걸 보면  -58쪽, '모래알' 몇 토막


시인 최기종은 모래알을 통해 언제나 짓밟히고 뭉개지는 "폭신한 것" 같은 민초들도 "저마다 고집이 있"다고 빗댄다. 권력이나 돈을 쥔 사람들이 바라보는 민초는 "꾸-구구구구 / 쥔장의 모이 주는 소리만 나면"(달구새끼) 냅다 달려오는 달구새끼들 같은 것이자 "손가락으로 툭 건드려도 / 비눗방울처럼 쉽사리 꺼질 것만 같은"(촛불소녀) 촛불 같은 것처럼 여겨지겠지만, 속내는 그게 아니다.

그 모래알 같은 민초들, 예전엔 "바람 앞에 지는 눈물" 같았던 민초지만 "지는 눈물이 모여서 성난 바다가 되었고 / 민주공화국 주인이 된다는 걸 불 밝혔"(촛불)다.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주장하며 사법재판소에 재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일본이 성노예 문제를 제 아무리 감추려 용을 쓰지만 "머리 띠 동여맨 / 15세 백발이 / 일본 대사관 들머리에서 / 70여 생을 주워 담고"(수요집회) 있지 아니한가. 민초는 이처럼 그리 몰캉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 혼자 볼썽사납게 튀어나온 나뭇가지
꽃도 없이 옆으로만 뻗어나가는 나뭇가지
작심하고 전지가위 들었는데
허공으로 가위질하고 말았다 -75쪽, '허공으로 가위질했다' 몇 토막

그래.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볼 때는 "볼썽사납게 튀어나온 나뭇가지"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 "꽃도 없이 옆으로만 뻗어나가는 나뭇가지"를 전기톱날로 자르려 하고 있다. 자기들 입맛에 딱 들어맞는 관상수로 만들기 위해. 시인이 전지가위를 들고 허공으로 가위질을 하고 만 것도 그 쓸모없이 튀어나온 것 같은 나뭇가지가 "생존의 목줄"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민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이 시대가 낳은 쓰린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을 시로 찍어낸다. 노동자, 농어민, 철거민, 노점상, 환경지킴이 등이 그들이다. 그뿐이 아니다. 시인은 그 사람들에게 끝없이 상처를 주고 있는 권력이나 돈을 쥔 자들, 그들이 액세서리처럼 매달고 있는 허세와 허영에도 찬물을 끼얹는다.

"'WORK'란 단어에는 지루한 사막이 있었다"('WORK'의 비밀)라거나 "백성의 소리는 무시되고 / 부당 해고시키고 서로 갈등시키고"(이게 큰일이다), "임금님이 병환 중이다. 이명 때문이라고 했다"(귀.2), "어제의 전사들이 / 팔뚝의 문신을 지우고 / 괭이 들고 망치 들고 서툰 밥벌이에 나섰다"(다시 전사), "내 편이 아니면 모두 마녀로 모는 시대"(마녀사냥) 등이 그러하다.

촛농에 온몸을 데이는 시

"세상살이 힘들어졌다고 / 집값은 천정부지고 양극화는 심해졌다고 / 취업문은 바늘구멍이고 비정규직만 늘어났다고 / 너대로 불만과 비난만 쌓이는 거다. / 우리의 소중한 가치라는 것이 / 길거리 뒹구는 돌멩이가 되어버렸구나. / 우리 가장 힘들 때 / 네가 먼저 껴안아주고 등 밀어주었는데 / 그때 우리들의 살아가는 방식 / 우리는 그냥 우리라는 것 / 그런데 너는 훌훌 털고 개천을 떠나는구나." -130쪽, '물결에게' 몇 토막   

시인 최기종이 펴낸 네 번째 시집 <나쁜 사과>는 온갖 나쁜 벌레와 나쁜 박테리아로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이 세상이란 사과 과수원에서 좋은 사과를 거두기 위한 악다구니다. 그 악다구니는 촛농에 온몸을 데이는 시가 된다. 귀가 있어도 백성들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권력을 비비 꼬는 조롱박이 된다. 희망버스가 사라진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매질하는 회초리가 된다.  

시인 강상기(포엠만경 회장)는 "<나쁜 사과>를 읽고 육신이 떨리는 감동을 받았다"고 적는다. 그는 "지금 궐 안은 각다귀들이 어지럽고 부패의 곰팡이에다 바퀴벌레들까지 설치고 있다"며 "최기종 시인은 이것을 나쁜 사과라고 했다. 그 나쁜 사과 때문에 사과들이 아우성이라며 일침을 가한다"고 썼다.

시인 김경윤(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은 "투박하고 소박하며 은근한 시어들로 내면의 웅숭깊은 성찰과 세사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담고 있는 그의 시들은 그가 세상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치는 '죽비소리'와 같다"며 "그가 온몸으로 쓴 시들은 '신새벽의 쇠북소리'가 되어 우리의 심연에 긴 여운을 남긴다"고 되짚었다.

시인 최기종은 1956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1992년 '교육문예창작회'가 펴낸 <대통령 얼굴이 또 바뀌면>에 '이 땅의 헤엄 못 치는 선생이 되어'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나무 위의 여자><만다라><어머니 나라>가 있다. 전국국어교사모임 전남회장 및 전교조 목포지회장, 신안지회장 등을 맡았으며, 지금은 한국작가회의 목포지부장을 맡고 있다. 또, 목포공업고등학교 교사다.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문학in]에도 보냅니다

나쁜 사과

최기종 지음,
시와산문사, 2012


#시인 최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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