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은 누굴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까?

시인 김진돈 첫 시집 <그 섬을 만나다> 펴내

등록 2012.08.23 15:03수정 2012.08.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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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시인 김진돈 시인 김진돈이 첫 시집 <그 섬을 만나다>(시와 세계)를 펴냈다.

시인 김진돈 시인 김진돈이 첫 시집 <그 섬을 만나다>(시와 세계)를 펴냈다. ⓒ 김진돈

우리들은 같은 손가락 끝에 갇혀 있다
그러나 그 섬은 먼 지평선만 바라보고 있다
우리들은 낯선 언어로 다른 계절에 서 있다

섬은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들도 섬을 알지 못했다
그 섬은 멀리 있다 아니 너무 가까이 있다
그들은 왜 지금까지 왔을까? - 14쪽, '그 섬을 만나다' 몇 토막


이 시집 제목에 실루엣처럼 떠도는 '그 섬'은 어디에 있는 섬일까. '그 섬'은 어떤 섬일까? '그 섬'은 북태평양 환류지역을 떠도는 섬이다. '그 섬'은 태평양 4대 해류가 모이는 곳에 있다. '그 섬'은 태평양을 끼고 있는 나라들에서 흘러나온 플라스틱 등 잡동사니가 해류를 따라 떠다니다 모여 지구촌에서 으뜸 가는 쓰레기더미를 이룬 곳이다.

수필가, 한의사이기도 한 시인 김진돈이 첫 시집 <그 섬을 만나다>(시와 세계)를 펴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그 섬'처럼 이 세상에서 쓰레기(병)로 사라지는 삶, 비록 몸은 병이 들어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지만 다시 일어서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뜨겁게 보듬는다. 시인 스스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병(모순)을 고치는 명의가 되기 위해서다.

이 시집은 1부 '아득한 들판에서', 2부 '기억의 거처', 3부 '하얀 망토의 마뜨료쉬까', 4부 '구름의 말', 5부 '결코 사라지지 않는 醫者(의자)' 등 모두 5부 64편에 이르는 시가 '그 섬'을 애타게 부르고 있다. "아직까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그 섬을 만나다) 그 섬, 다가가지만 늘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섬을 말이다 

'동대문이 열리면 우린 새벽시장에 간다', '벽속으로 지워지다', '한여름 밤, 夢(몽)', '그리운 정지선', '기억 속에 흘러내리는 그녀', '구부러진 것들', '어두운 통로 그리고 우리들', '해질 무렵', '구름의 말', '초대, 그대는 아는가?', '떨어진 말들', '그 뜨거운 반동', '빗방울 뒤의 풍경', '양식과 위장', '나를 지우기 시작한다', '딸기와 여자' 등이 그 시편들.

시인 김진돈은 '시인의 말'에서 "걸어가야 할 길은 / 첩첩산중이어서 / 성심껏 준비했지만 / 부족함 투성이고 / 발걸음은 무겁다"고 입을 뗀다. 그는 "그(시)를 / 잠시 / 내려놓고 / 상하 좌우 전후 표리를 / 살펴보지만 / 여전히 / 허술함뿐"이라고 속내를 툭툭 털어냈다. 여기서 시인이 잠시 내려놓은 것은 시뿐이 아니다. 이 세상 온갖 모순(병)에 시름하는 사람(환자)들이다. 


'사면의 벽'에 갇혀 있는 세상, '사면의 벽' 바깥에 있는 세상

나는 사면의 벽으로 들어갔다 유리창엔 부릅뜬 눈알들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내가 계속 복제되어지고 있었다 벽 속의 나는 네가 보는 것보다 빠르게 복제되고 너의 침묵은 나를 토론하게 했다 // 나는 내가 어디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물고기들은 가로수를 따라 날아다녔고 붉은 새들은 아파트를 덮었고 나는 그들과 대화를 했다 벽 바깥엔 노란 밤들이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내닫았고 나는 걸을 수 없었지만 날 수는 있었다 하지만 - 24쪽, '벽 속으로 지워지다' 몇 토막  


시인 김진돈은 어지럽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제대로 된 것이 없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없다. 시인 자신도 마찬가지다. "사면의 벽"으로 들어간 시인은 "네가 보는 것보다 빠르게 복제되고" 있어 내가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벽 바깥엔 노란 밤들이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내닫"고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는 '사면의 벽'은 시인이 일하는 병원 진찰실일 수도 있고, 시인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가두고 있는 하늘과 땅, 산과 바다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 '사면의 벽'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시인이 '참'을 찾기 위해 스스로 들어간 그 '사면의 벽' 바깥에서는 휘황찬란한 불빛이 어둠에 노오란 현기증을 칠하고 있다.

시인이 바라보는 이 세상은 두 가지다. '사면의 벽'에 갇혀 있는 세상과 그 '사면의 벽' 바깥에 있는 세상이다. 시인은 이 두 세상을 오가며 '참'을 찾는다. '사면의 벽' 바깥에 있는 시인이 '사면의 벽'에 갇혀 있는 환자를 돌보러 병원으로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인에게 있어서 모순덩어리(병)인 이 세상은 곧 '사면의 벽'에 갇힌 환자에 다름 아니다.    

한약재와 사람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a 시인 김진돈 첫 시집 <그 섬을 만나다> 시인 김진돈은 어지럽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제대로 된 것이 없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없다

시인 김진돈 첫 시집 <그 섬을 만나다> 시인 김진돈은 어지럽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제대로 된 것이 없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없다 ⓒ 시와세계

약재를 꺼내려고 한약장 앞에 섰다
사각형 안에 한약재들이 가지런하다
그들은 치료되는 목표치로 나를 유혹한다
뿌리는 고통을 안은 채
저마다 푸른 언어로 고여 있다
달려온 백출, 당귀, 숙지황, 천궁이
활어처럼 요동친다 허기진
풀밭을 헤엄쳐온 너, - 99쪽, '名醫(명의)' 몇 토막

시인 김진돈은 한의사다. 시인은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아온 환자들에게 그저 한약재를 처방해 병을 치료하는 그런 단순한 한의사가 아니다. 시란 한약재를 들고 온갖 몹쓸 병에 걸려 끙끙 앓고 있는 이 세상을 치료하는 시인이다. 그가 환자를 돌보며 시를 쓰고 있는 것도 환자와 이 세상이 서로 다르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이 환자를 돌보기 위해 쓰는 한약재도 마찬가지다. 그 한약재가 어디서 온 것인가. 눈부시도록 빛나는 햇살과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장대비 혹은 는개와 맑은 공기를 머금은 저 대자연이 낳은 풀과 나무들 아닌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안과 밖이 어디 있는가. 안이 곧 밖이요, 밖에 곧 안이 아닌가.

시인이 대자연과 사람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여기는 시편들은 이 시집 곳곳에 한약재처럼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 "오전에서 오후가 찢겨나오고 / 빠져나간 호르몬 양만큼 쭈그러진 허공"(낯선 풍경)이라거나 "너의 약제실에서 / 나의 진료실로 건너온 약재들 / 음양오행으로 너를 만들었지만"(신경증), "밥을 먹는다는 것은 / 위장을 잘라내는 행위"(양식과 위장) 등이 그러하다.

이쯤에서 시인 김진돈에게 한 마디 툭 던지고 싶다. 그대가 찾고 있는 '그 섬'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그대가 환자를 돌보고 있는 바로 그곳, 병원이라는 것을. 그 병원이 곧 그대가 펴낸 시집이며, 그 환자들이 그대가 쓴 시편들이 아니겠는가. 그대가 찾는 시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그대 곁에 줄줄이 매달려 있으니 참 행복한 시인 아닌가.  

지구촌은 엄청나게 큰 병원, 사람들은 병을 앓는 환자

"약초밭 / 그녀는 푸른 뿌리의 침묵을 / 꼭다문 씨앗의 숨소리를 / 붉은 잎사귀의 그림자를 / 읽는다 // 그 입술에 추출되어 건너는 약재의 변신 / 그는 죽어서 끓어올라 / 그는 죽어서 살아올라 / 그는 죽어서 남아올라 // 잎사귀, 가지, 꽃 / 열매, 껍질, 뿌리 / 손목으로 회전시키는 반동 / 그는 죽어서 날아오른다 그 뜨거움 / 그는 죽어서 살아오른다" -102~103쪽, '그 뜨거운 반동' 몇 토막

시인 김진돈이 펴낸 첫 시집 <그 섬을 만나다>에 나오는 '그 섬'은 병원이다. 그 병원은 시인이 환자를 돌보는 병원이기도 하지만 시인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돋보기이기도 하다. 약초가 죽어서 날아오르고, 죽어서 살아오를 수 있는 것도 약이 되어 환자를 살리는 순간이다. 시인은 이 시집에서 지구촌은 엄청나게 큰 병원이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병을 앓는 환자에 다름없다는 사실을 일깨우게 만든다. 

시인 이승훈(한양대 명예교수)은 "시인의 상상력 뿌리는 그의 한의사 체험이고, 그것은 약재의 변신을 동기로 한다"고 입을 뗀다. 그는 "'그 뜨거운 반동'에서 약재는 죽어서 끓어오르고, 죽어서 살아 오르고, 죽어서 남아 오른다"라며 "소멸이 생성이고 죽음이 탄생이다. 약재는 사라질 때 가치를 인정받는다. 절후재소(絶後再蘇), 죽어야 다시 태어난다. 소멸의 미학이 탄생의 미학"이라고 썼다.

문학평론가 유성호(한양대 교수)는 '성찰과 기억의 항체'라는 시집 해설에서 "자신과 사물과 청자를 향한 단단한 기억과 성찰의 과정은 그 자체로 견실한 성취를 거두고 있다"며 "독자들은 그의 시편들이 담아내는 사라짐의 흐름과 속성을 감지하며 시인의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시인 김진돈은 2001년 월간<수필문학>에 수필을 발표하고, 2011년 계간 <시와 세계>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한방체질약차 110% 활용법><자녀건강><사계절 웰빙음식>이 있다. 한국노동교육원 객원교수와 송파수필작가회장을 맡았다. 지금은 송파문인협회장과 이상시문학상 운영위원, 경희대 한의대 외래교수, 운제당 한의원장을 맡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문학in]에도 보냅니다

그 섬을 만나다

김진돈 지음,
시와세계, 2012


#시인 김진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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