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입양인 김소피씨
김소피
김소피씨는 1973년 1월 8일 오후 9시 서울 동교동 5-21번지 길가에서 행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날은 그녀의 생일로 기록된다.
기록에 따르면 해외입양 보내지기 전 소피씨는 영양실조에 걸렸고 홀트병원에 얼마간 입원해 있었다. 그녀 왼쪽 엉덩이에는 길이 2cm 깊이 1cm의 흉터가 있다. 그리고 생후 18개월째인 1974년 9월 28일 그녀는 홀트를 통해 덴마크로 해외입양 보내졌다. 소피씨는 자기가 어떻게 해서 덴마크로 해외입양 보내졌는지 전혀 모른다. 다만 소피씨는 1970년대 친모가 미혼모나 가난한 여성으로서 생활고와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차별 때문에 자신의 양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덴마크에서 입양인으로 자라면서 소피씨가 직면했던 가장 어려웠던 일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내가 속한 나라는 어디인가'라는 소속감, 그리고 부모로부터 아이들이 떨어 졌을 때 느끼는 분리불안감이었다.
특별히 소피씨는 십대에 자신에 대한 정체성, 소속감 그리고 이에 대한 혼돈으로 심한 내적 번민과 갈등을 겪었다. 그녀는 입양부모의 지원과 주위 친구들 덕에 이런 혼돈을 그나마 큰 탈 없이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피씨에게 가장 큰 위로와 힘을 준 것은 음악이었다.
"음악이 나를 살렸어요. 난 음악을 연주했고 미친 듯이 들었지요. 음악을 통해 나는 현실의 괴로움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어요."그래서 이런 소피씨에게 음악은 마치 구원자와도 같았다.
소피씨가 9세 때 덴마크 가족이 호주의 아들레이드로 이민을 갔다. 그녀가 타향살이에 또 다른 타향살이를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덴마크 입양부모님과 아주 화목한 관계를 유지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입양부모는 소피씨를 입양 한 후 딸 둘을 낳았고 그녀는 여동생 둘과 지금까지도 다정다감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청소년기 '혼돈' 극복하게 해준 음악, 이제는 직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