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를 위한 저의 집 보실래요?

떨켜를 만드는 낙엽수의 버림, 사람도 배워야

등록 2012.08.27 20:17수정 2012.08.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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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는 방금 사용하시던 가위를 반짇고리 바로 옆에 두고서도 찾지를 못해 제게 묻곤 했습니다. 가위뿐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경우는 안경을 왼손에 쥐고 안경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참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요즘 제가 그렇습니다. 잘 둔 물건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카메라 충전기를 찾지 못해 결국 다시 구입하는 경우도 있고, 메모노트를 찾지 못해 안달하는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런 현상은 누구나 거칠 수밖에 없는 노화의 한 과정입니다. 인생의 가을이 가깝다는 징후이지요.

겨울을 대비한 식물들의 가을준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낮 시간이 짧아지고 햇빛을 받는 시간이 줄어들고 밤기온이 내려가는 것을 느낀 낙엽수들은 가지와 잎꼭지 사이가 굳어져서 수분과 자양분을 통하지 못하게 하는 떨켜를 만듭니다. 스스로 엽록소를 파괴하는 거지요. 초록색은 약해지고 노란색과 주황색이 뚜렷해지고 차가운 기온으로 잎속의 당분이 파괴되어 빨간색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나무는 가을에 새로운 잎을 내는 대신 오히려 특수한 세포층을 만들어 잎을 분리시키고 잎이 떨어진 자리를 굳어진 세포가 감싸서 겨울을 대비합니다.

사람이라고 해서 가을의 문턱에서 겨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력과 기억력 등 가을의 징후가 선명해질수록 어떻게 인생의 겨울을 맞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떨켜는 단순화(simplification)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유와 관계를 모두 단순화 시켜나가는 것(simplify )이야말로 편안한 노후를 대비하는 최상책이라는 판단입니다.


그러므로 정년퇴임 후에 산수가 수려한 외진 산골에 큰 집을 짓는 일은 부럽기보다 안타까움입니다. 친구들이 있는 곳과 너무 멀어서 밤마실가듯 찾아가야 할 곳이 아니며 부부가 살기에는 큰 집은 안식이기보다 노동을 가중시킵니다. 건강이 젊은 시절 같지 않은 때에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기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을이 익어가는 때를 대비한 어떤 모델을 여러 해에 걸쳐 눈여겨보았습니다.


소로우의 오두막

그 첫 번째는 월든호수가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오두막입니다.

보스턴에서 40여 분을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월든 호수(Walden Pond). 1845년 소로우는 이 호숫가에 스스로 벽난로와 침대, 책상만 있는 단칸의 나무집을 짓고 자급자족하면서 금욕하는 삶을 2년간에 걸쳐 시도합니다. 그는 이 오두막에서 숲을 거닐고 호수를 바라보는 시간외에는 독서하고 글 쓰는 시간으로 채웠습니다. 그 단순화된 생활의 기록이 1854년에 발행된 '월든(Walden)'입니다.

소로우의 오두막이 있던 자리에는 소로의 명구가 남겨져 있습니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과 직면하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월든'은 현란한 소비와 소유의 현 세태에 '불복종'해야 하는 수많은 이유를 담고 있습니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그렇다.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게 하지 말라. 간소화하라, 간소화하라. 하루 세 끼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한 끼만 먹으라. 백 가지 요리는 다섯 가지로 줄이라. 이런 비율로 다른 일도 줄이라."

소로우의 삶의 태도와 그것을 실제로 구현했던 월든 호수가의 오두막은 가을을 맞는 사람들에게 나무의 '떨겨'처럼 마음속에 새겨두어야 할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그의 작곡실

가난한 남편 페르귄트와 아내 솔베이지의 슬픈 이야기를 담은 페르귄트 제2모음곡(Suite No.2 Peer Gynt)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Song).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으면 그 곡의 작곡가 그리그(Edvard Hagerup Grieg)가 생각나고 그리그를 생각하면 그가 정주하면서 작곡에 몰두했던 고향 노르웨이 베르겐의 오두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그의 집, 트롤하우젠(Troldhaugen 요정의 언덕이라는 뜻)은 풍광 좋은 Nordasvannet 호숫가에 1884에 시작해 2년간에 걸쳐 건축되었고 그리그는 190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 여름 이곳에 거주하면서 작곡하였습니다.

트롤하우젠의 호수로 면한 언덕길을 내려가면 빨간 단칸집, 작곡자의 오두막(The composer's hut)이 있습니다. 바다를 향한 책상하나, 피아노 한대, 소파하나가 전부인 이 오두막에서 그리그는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제게 노르웨이는 이 작은 오두막으로 요약되어 기억됩니다.

버나드 쇼의 집필실

아일랜드태생의 극작가 이자 소설가이며 비평가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그의 촌철살인의 명언들은 여전히 세계 사람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하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는 실패한 곡물상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가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과 미술 등 예술 전반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을 자주 방문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특히 오페라에 탁월한 식견을 가졌고 또한 사진가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어머니를 따라 더블린에서 런던으로 이주한 이후 대영박물관 독서실에서 쓴 소설들은 모든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았습니다. 이런 실패들이 그에게 좌절과 빈곤을 안겼지만 자아를 숙성시키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의 인생의 혜안이 담긴 재치와 언변은 인생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셰익스피어 이후 가장 위대한 극작가라는 칭송을 듣고 있는 그의 걸작중의 하나인 '피그말리온 Pygmalion'을 통해서도 그의 번뜩이는 기지와 시원한 독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희곡은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라는 뮤지컬과 영화로 제작되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었지요.

192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고 1950년 9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그의 삶 어느 부분도 제게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지만 유독 저의 마음을 바로잡은 것은 'Shaw's Corner'라는 그의 집입니다. 런던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쯤의 거리에 있는 Ayot St Lawrence 마을에 있는 'Shaw's Corner'는 그가 1906년부터 사망 시까지 44년을 지낸 곳입니다. 이미 그의 명성이 높아졌을 때 이사 온 이집은 현재 '내셔널트러스트'에서 버나드 쇼가 사망하던 시기의 모습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 집의 정원 끝에 단출한 우두막 집필실(George Bernard Shaw's writing hut)이 있습니다. 5.9 m2(1.8평)에 불과한, 마치 경비초소 같은 이 작은 오두막에서 '피그말리온'을 비롯한 수많은 그의 작품이 쓰였습니다. 이 오두막은 회전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둥근 트랙을 두어 낮시간동안 태양의 광선을 따라 회전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쇼는 이 오두막을 'London'이라고 이름 지어서 만약 만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오면 '주인님, 런던가셨습니다'라고 해서 수도 런던으로 간 것으로 알게 했습니다. 이 집필실의 이름에서도 쇼의 재치와 해학을 느낄 수 있으니 이 또한 즐거움입니다.

나의 달팽이집, 캠핑 트레일러

 캠핑트레일러 에어스트림 밤비2
캠핑트레일러 에어스트림 밤비2 이안수

 주거를 위한 최소한의 시설이 갖추어진 트레일러 내부
주거를 위한 최소한의 시설이 갖추어진 트레일러 내부 이안수

제가 게으르게 지내는 데 문제가 없는 최소화된 규모의 집을 구상하는 데는 이 세 예술가의 집이 좋은 모델이 되었습니다.

소로우의 오두막은 자급자족하며 실제로 사계절 거주가능한 집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리그의 집은 작곡시 이용하는 작업실로 거주는 염두에 두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호숫가의 풍광을 창밖으로 만끽할 수 있는 언덕위의 그림 같은 작업실입니다.

쇼의 집필실 오두막은 작업실로만 사용되었지만 볕을 따라 움직이도록 되어있습니다.

저는 주거가 가능하면서도, 자연의 풍광과 함께할 수 있으며 움직임이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카라반(caravan 이동식 주택)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저는 미국 오리건 주에서 에어스트림 밤비2라는 캠핑트레일러 1962년 클래식 모델을 구했습니다. 50살이나 된 이 캠핑트레일러는 한동안 사용하지 않던 것으로, 그것을 한국으로 들여와서 실내를 최대한 원형에 가까게 유지하면서 저의 용도에 부합할 수 있도록 손을 보았습니다.

세계에 수많은 캠핑트레일러 제조업체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군계일학은 미국의 에어스트림Airstream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30년에 창업된 회사로 한결같이 캠핑 트레일러만 만드는 회사입니다.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뛰어난 듀랄루민을 재단해서 리벳으로 이어 붙였습니다. 둥글고 앙증맞은, 세월을 타지 않는 디자인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Bambi'는 오스트리아의 작가 F.잘텐의 동물소설에 나오는 아기사슴입니다. 그 이름의 이미지처럼 이 모델은 길이 17ft(5.2m)에 불과한 작은 공간에 취사와 샤워 수면이 가능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저는 이곳에 작은 책상을 넣어서 어디서든지 글 쓰고 독서하는 일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길 떠날 날을 기다리며 작업실로 기능하면서 오픈스튜디오로 사람들의 호기심에 답하기도 합니다.

마침내 소로우의 오두막처럼 온전히 주거가 가능하고 세계의 어디든 갈 수 있으니 그리그의 오두막에서 보는 풍경들을 찾아 갈 수 있으며 한곳에 진력이 나면 다시 움직이면 되는 쇼의 회전하는 오두막의 기능이 포함된 셈입니다. 

달팽이집처럼 작고 효율적이면서 노마드의 욕망을 충족할 수 있으니 큰 위안입니다. 무엇보다도 크고 화려한 것을 향한 소유의 욕망을 다스리게 하는 제 마음의 도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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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소로우 #버나드쇼 #그리그 #에어스트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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