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기원> 겉표지
알마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 인문학 연구센터의 연구전담 교수로 제노사이드를 연구해온 존 도커는 <폭력의 기원>(알마)을 통해 폭력 중에서도 집단 간의 폭력에 주목하고, 폭력의 기원을 탐구하고자 한다. 저자는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원인을 되도록 먼 곳에서부터 찾기 위해 '인간 이전'의 역사까지 더듬는다.
성경의 <출애굽기><여호수아서><사사기>와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 플라톤, 키케로, 베르길리우스, 타키투스의 저작들과 셰익스피어와 흄, 리오타르, 들뢰즈의 저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전들과 영장류동물학, 진화론, 세계 역사를 두루 살펴 제노사이드와 정치철학 등을 분석한다.
그리고 저자는 인류의 역사가 유일신교와 다신교를 막론하고 신이 허락한 정복, 식민화, 제국 건설, 민주주의와 제국의 치명적 결합 그리고 혁명, 대학살, 고문, 신체 절단, 잔학 행위 등이 자행되어 온 전쟁과 제노사이드로 물든 폭력의 역사라고 말한다.
저자는 재난과 재앙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탐구하고, 그래서 치열하고 명확한 인식에 도달할 때에만 폭력에 대한 대안이 떠오를 수 있다고 말한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폭력이 난무하고 폭력적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폭력에 대한 대안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침팬지 사회-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발견된 '제노사이드'그렇다면 폭력을 행하는 건 인간만이 가진 특성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 연구에 의한 일반적인 통념은 정교한 지성을 갖춘 인간만이 고통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희생자의 고통을 극대화시켜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기거나 거기에 무관심할 수 있기 때문에 잔학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침팬지 연구를 진행해온 제인 구달에 따르면 폭력에 있어서 인간과 다른 영장류의 차이를 확신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는 침팬지 역시 잔학 행위를 저지르고, 어느 정도는 욕망과 감정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동정에 가까운 감정을 느낄 줄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랜 종단연구(장기간의 시간 흐름에 따른 변화를 관찰하는 연구)를 통해 구달은 침팬지 공동체가 두 집단으로 나눠지면서 침팬지들이 '폭력적인 공격성'을 드러내는 장면을 목격했다. 구달에 따르면 침팬지들이 특정한 상황에 닥치면 같은 종족을 죽이거나 심지어 잡아먹기도 한다는 충격적인 행동특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구달의 분석은 제노사이드란 한 집단의 필수적인 생존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도하는 다양한 행위의 통합 계획을 의미한다는 라파엘 렘킨의 논의와 일치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제노사이드의 또 한 가지 특징은 가해자들이 폭력을 즐길 뿐 아니라 극단적인 위험을 무릅쓸 정도로 폭력에 끌린다는 점이다.
댄 스톤의 논문 '관습 위반으로서의 제노사이드'에 따르면 캄보디아와 르완다 사태, 난징의 강간, 밀라이 학살의 경우처럼 현대의 제노사이드와 대량 학살은 인류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관습을 위반한 폭력이었다. 살인 혹은 살인에 대한 기대 심리를 포함한 폭력의 향유이자 잔혹극 그 자체로서, 가해자는 난교 파티가 연상될 정도로 폭력 행위를 즐긴다. (본문 53쪽)이에 대해 발터 벤야민은 역사의 문명인과 야만인은 영원히 공존한다고 했으며, 저자는 결국 평범한 일반인들도 제노사이드와 대량 학살을 저지를 수 있다고 말한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 전범 아이히만을 보며 아렌트는 악한 일을 행한 인간은 평범할 수 있으나 악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고 말한다.
흔히 제노사이드와 같은 잔학 행위는 힘으로 다른 나라 혹은 집단을 제압하는 제국주의 국가에서나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아테네처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는 제노사이드와 같은 잔학 행위에 가담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착각이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이러한 일반적인 믿음을 가차 없이 깨뜨려버린다.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오히려 그와 반대로 식민지를 개척하는 제국이나 초대국을 건설하는 민주주의 민족국가가 그런 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특히 더 높다고 이야기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을 꽃피웠던 인물로 알려져 있는 페리클레스가 숭배한 것은 근대에 들어 '지배민족'이나 '인종민주주의'로 인식했던 것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투키디데스는 특정 집단이 우월하다는 개념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적 체제는 필연적으로 정치 폭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잊지 않고 지적했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아이러니한 역사의 악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