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세 때 모습. 배운 게 없어 과일장수를 포기했던 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조종안
태풍 '덴빈'의 영향권에 들어간 군산은 새벽부터 대문 앞 전봇대가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불고, 폭우가 무섭게 쏟아지고 있었다. 창밖을 보니 하늘은 궂은일을 예고라도 한 듯 온통 먹구름이요, 전깃줄 사이로 맴도는 회오리바람은 늦가을 장마에 구렁이 울음처럼 음산하게 들렸다.
정초에 어금니가 빠지는 꿈을 꾸고 아내에게 해몽을 곁들이면서 "아무래도 어머니(장모)가 올해를 넘기기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하니까 굳은 표정으로 상념에 잠기던 아내 얼굴이 떠올랐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고, 구렁이가 울면 궂은일이 생긴다는데···. 이런저런 불길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부산에 오지 마세요. 날씨가 장난이 아니에요. 방금 전화가 왔는데, 어머니가 조금 전(8시 40분)에 돌아가셨답니다. 그래서 익산-장계 고속도로 완주 IC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가고 있어요. 장례는 군산에서 치른다고 합니다. 영구차는 오후 3시쯤에나 도착할 것 같다니까 준비하고 있으세요···."
전화를 끊으면서 '장모님은 죽으면서도 자식들을 보살피는구나!' 소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아내가 차를 몰고 호남고속도로 논산IC에 진입하자 시야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고, 10분쯤 지나서 5중 추돌사고를 목격한 후로는 운전하기가 무서웠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장모님 상(喪)을 주변에 알리느냐 마느냐로 고민이 되었다. 50년 지기에서 최근에 사귄 친구들까지 면면을 떠올리다가 이웃도 모르게 조용히 치르기로 마음을 굳혔다. 사람들이 밖에 나가기조차 꺼릴 정도로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연이은 태풍 피해로 '내 코가 석 자'일 터인데 부담만 안겨주는 것 같아서였다.
지인에게 전화가 걸려왔으나 형식적인 안부인사만 나누고 끊었다. 장모가 돌아가셨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후 2시쯤 영구차가 장례식장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집을 나섰다. 아무래도 형님에게는 알려야겠기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빈소로 향했다.
장모님 생각하면 떠오르는 추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