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수유마을시장 골목 한쪽에 위치한 '작은도서관'은 바쁜 가게 운영으로 책을 접하기 쉽지 않은 시장 상인들과 장을 보러온 주민들에게 책을 무료로 대여해준다.
유성호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4일 오전,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서울 강북구 수유마을시장. 옷 가게, 만두집, 이불집, 신발 가게 등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풍경은 여느 전통시장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골목 한쪽에 수유마을시장의 명소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10년 12월에 개관한 '작은도서관'이다.
수유마을시장은 인근의 건물형 수유시장, 수유재래시장, 수유전통시장을 묶어 붙인 애칭이다. 세 곳을 합치면 점포가 350여 개, 상인과 직원이 1000여 명, 유동인구만 하루 1만 3000여 명으로, '시장으로 이루어진 마을'인 셈이다.
"돈만 아는 무식한 상인"?... 생선가게 사장님, 도서관 관장 되다 어떻게 시장통에 도서관이 들어서게 됐을까? 도서관은 올해로 20년째 생선가게 '강북수산'을 운영하고 있는 이재권(50)씨의 손에서 시작됐다. 인문학 분야 책을 즐겨 읽던 이씨는 인근 상인들과 서로 책을 빌리고, 빌려주다 상인들이 책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장 곳곳을 돌면서 책을 대출해주는 '책수레'가 상인들의 마음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도 힌트를 얻었다. 책수레는 문화체육관광부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인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시장문화활력소'의 아이디어였다. 시장문화활력소는 전통시장의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고 기획하는 단체로 2009년 6월부터 2011년 말까지 수유마을시장의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맡았다.
이재권씨는 시장문화활력소와 함께 도서관 건립을 추진했다. 상인들에게 책을 기부받고 사비를 보태 상인회 사무실 옆 창고를 지금의 도서관으로 탈바꿈시켰다. 13평 남짓 크기의 도서관이지만 문학, 경제, 사회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구비했다. 보유도서는 3000여 권. 이씨는 "상인들은 돈만 아는 무식한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보고 싶었다"면서 "특히 문화에 대한 감각이 있는 30, 40대 젊은 상인들이 도서관은 꼭 필요한 장소가 됐다"고 귀띔했다. 생선가게 사장이었던 이씨는 도서관 관장 직함도 갖게 됐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시장에서 큰돈 벌어 다른 데 건물 하나 사서 월세나 받으며 살고 싶어 하잖아요. 20~30년 동안 시장에서 아이들도 키우고 살았으니까 번 돈의 일부분을 시장에 뿌려주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사명감을 갖고 도서관을 만들었어요." 이날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온 손진미(33, 가경정육점)씨는 "정신없는 시장통에서 도서관 덕분에 조금이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다"며 "도서관과 시장은 '극과 극'처럼 보이지만 이제 상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휴식처가 됐다"고 말했다. 손 사장은 "상인들끼리 무슨 책을 보느냐며 묻고 추천하기도 한다"면서 "장사하기 바쁜 상인들 사이에 대화의 문을 열어주는 게 도서관"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시장도서관이 상인-주민 이어주는 '사랑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