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쓰다가 생명력을 맛보다

오정희 작가의 <이야기 성서>

등록 2012.09.20 17:17수정 2012.09.2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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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겉그림 〈이야기 성서〉

책겉그림 〈이야기 성서〉 ⓒ 여백

"젊은 시절, 미당 서정주 선생님의 '문학을 하려면 반드시 성서를 읽어야 한다. 성서를 모르면 서양의 문학과 서양인들의 정신세계를 알 수 없다. 특히 구약은 무한한 상상력의 보고이며 방대하고 장엄한 문학작품이다'라는 말씀으로 인해 성서는 내게 반드시 거쳐야 할 세계로 각인되어 있었다."(저자의 말)

오정희 작가가 쓴 <이야기 성서>에 나오는 고백입니다. 굳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밝힌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성서가 지닌 무한한 세계의 깊이를 맛보도록 하기 위한 표현에 더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그만큼 성서는 문학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수 강독서임에 틀림없다는 뜻이겠죠.


이 책은 구약성경의 창세기와 출애굽기, 그리고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쓴 것입니다. 그녀만의 묵상과 성찰을 담은 사경(寫經)의 성격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기존에 나온 책과 문헌들을 접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신학적인 해석과 역사적인 해석이 필요한 부분들은 기어코 다른 자료들을 인용한 자취들이 베어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드린 아벨의 예물은 기쁘게 받으셨으나 카인의 예물은 기뻐하지 않으셨다."(26쪽)

이른바 가인과 아벨이 드린 예물에 관한 기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예물은 기쁘게 받으셨지만 가인의 예물은 기뻐하지 않으셨다고 밝혀주죠. 이 또한 성경의 주석서를 참조한 부분일 터입니다. 하지만 그 참뜻과는 조금은 거리가 먼 듯합니다. '아벨과 그 제물', '가인과 그 제물'에 관한 부분을 빠트린 채 그 '예물'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죠.

"십계명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 하느님 나라의 헌법이다. 하느님은 먼저 공동체에 자유와 생명을 주셨고, 이제 그것을 구체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르침인 '열 가지 말씀'을 주셨다."(208쪽)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열 가지 말씀' 곧 십계명을 두고 일컫는 해석입니다. 그녀는 십계명이 인간의 자유를 옭아매는 올가미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사는 자유이자 생명의 원천이라 밝혀줍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참된 길로 생각한 까닭일 것입니다.


"베드로의 집터 위에 세워진 성당. 예수께서는 정처 없이 다니는 중에도 베드로의 집에서 자주 머물렀다."(275쪽)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활동내용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그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리고 부활 승천하기까지, 예수님께서 활동한 부분을 성경에 따라 곧이곧대로 묵상하면서 사경(寫經)을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자주 머물렀다는 부분은 성경에 거의 나오지 않는 부분이죠. 다른 주석서에 너무 몰입한 흔적이라 아니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사실 성경에 관한 이야기는 그녀만의 전유물이 아닐 것입니다. 성경은 신앙인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궤적을 추적케 하는 위대한 보물 창고죠. 그런데도 굳이 그녀가 <이야기 성서>를 써 내려간 것은 그녀가 묵상하고 깨달은 부분이 남다른 까닭이었겠죠. 성경 속 인물들이 겪은 사건들마다 새로운 의미들을 건져낸 것 말이죠.

'가장 오래된 사랑의 기록'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을 읽는 동안, 태곳적부터 흘러 온 모든 시간과 사건들이 실은 나를 위해 준비해 온, 성경의 표현대로 '여호와 이레'의, 그 큰 은총임을 실감케 될 것입니다. 그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을 살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이자 이유인 까닭이죠.

크리스천 가운데 성경을 사경(寫經)하고 필사(筆寫)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성경을 그대로 따라 쓰거나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옮겨 쓰기도 하죠. 놀라운 건 그걸 옮겨 쓰다가 나름대로 생명력을 맛본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활자화된 글자가 자기 삶에 독특한 영감을 불어 넣는 것 말이죠. 이 책도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오정희의 이야기 성서 - 가장 오래된 사랑의 기록

오정희 지음,
여백(여백미디어), 2012


#오정희 작가의〈이야기 성서〉 #미당 서정주 #사경(寫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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