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식물예술원옹기전시장
박영미
다음으론 '가장 한국적인 것은 무엇이냐'라는 의문점부터 시작해 옹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40여 년 전, 옹기를 찾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귀하게 보관해둔 청자와 백자는 돈만 있으면 샀지만, 서민들이 사용했던 옹기는 쉽게 사용 되고 쉽게 버려졌기 때문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옹기가 가지고 있는 기능, 효능을 연구하며 그 가치에 놀란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수소문해 옹기 수집에 열을 올렸다.
제주도에서 북한산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모아놓은 옹기들은 눈, 코, 입을 그려 넣은 소줏고리에서부터 칸딘스키 뺨칠 정도의 기하하적 문양이 돋보이는 커다란 항아리, 양반가에서 쌀독의 역할을 했던 엄청나게 큰 항아리, 낙지잡이 통, 닭 물통, 대형시루 등 우리 민족의 생활상을 한눈에 읽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현재 옹기의 가치가 재조명 받으면서 옹기를 연구하려는 학자들 사이에선 김 원장은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