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보이는 곳에 너는 게 지저분하다, 친근하다는 논쟁은 이미 70년대부터 있었다.
김대홍
빨래 널기에 대한 거부감이 생소하지만 그 역사는 짧지 않다. 1970년대부터 이미 아파트에서 빨래 너는 것에 대해 논란이 일었으니 말이다.
원로피아니스트 한옥수는 1976년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아파트 베란다에 너는 세탁물 풍경이 논란이 되는 세태를 아쉬워했다. 그는 "널려 있는 빨래로 인해서 가정적인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면서 아파트 베란다에 널린 빨래를 옹호했다.
이어 빨래를 보이는 곳에 널지 않은 서양의 아파트에 가봤더니 오히려 복도 같은 곳에 널어서 더 지저분하더라며 나름대로 논리를 편다.
이런 논리가 지금은 먹힐 수가 없다. 빨래건조기 때문이다. 건조기에 넣고 빨래를 돌리면 뽀송뽀송하게 말려주니 굳이 빨랫줄에 널지 않아도 된다. 2000년 2% 정도에 불과했던 건조기 보급률이 대략 10년이 지난 지금 10% 정도로 크게 는 것은 빨래건조에 대한 현 세태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가 따라가고 있는 미국의 경우 빨래건조기 보급률이 꽤 높다. 2006년 기준 81%였으니 대부분 가정에 건조기가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추세대로 간다면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골목은 시대에 역행한다. 여전히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이나 옥상, 담 등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빨래를 널곤 한다. 이불이나 수건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고 바지나 신발도 종종 볼 수 있다. 드물지만 속옷이나 아이들 잠옷을 내건 경우도 있긴 하다.
혹자는 내걸린 빨래가 가난을 상징한다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하긴 골목에 가난한 이들이 많이 사는 건 사실이니 내걸린 빨래와 가난이 연관성이 없다고 말하긴 힘들다. 그런데 만약 가난이 죄가 아니라면 내걸린 빨래를 꼭 터부시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내걸린 빨래가 건조한 도시에 생동감을 준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쨌든 갈수록 골목은 사라지고, 아파트는 늘고 있다. 이 추세대로 간다면 길을 걷다 빨래를 볼 날이 그렇게 많이 남지는 않았다.
빨래를 감추는 사람들, 드러내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