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4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남소연
문재인 대 안철수, 진검승부가 시작됐다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는 박원순이라는 시민사회 출신의 걸출한 인물 대 중견급 여성 정치인 박영선의 대결에서 맥없이 후보 자리를 시민사회 쪽에 내주었지만 이번에는 시간을 갖고 충분히 싸우면 '역전의 드라마'도 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엿보입니다.
민주당이 좋은 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지면 안철수 후보를 충분히 꺾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지요. 다년간 선거로 단련된 수많은 전략가들이 포진돼 있는 민주당 대 정당도 없는 정치신예 안철수 후보가 붙는다면 그 결과는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재인캠프도 안철수캠프도 '10월은 전략의 달'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문재인 후보는 4일 10명의 선대위원장단을 선임했습니다. 우상호 공보단장은 이날 "상임선대위원장 없이 10명의 선대위원장이 수평적 네트워크 형태로 이번 대선을 지휘한다"고 밝혔습니다.
우 단장은 "이런 대선캠프는 역사상 처음"이라며 "계파와 선수 중심의 여의도 정치에서 벗어나 정당과 시민정치를 접목하는 새로운 정치를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계급장을 떼고 서열과 선수를 파괴한 채 정당개혁과 정치혁신을 위해 뛰겠다고 했습니다.
우 단장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 스스로도 과연 그렇게(계파와 선수 무시한 채로)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낡았다"면서 "그러나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언제 정치혁신을 할 수 있겠나 싶어 계급장 떼고 서열 없이 수평적 네트워크로 정치혁신을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공동선대위원장단에는 김부겸 전 최고위원과 박영선·이인영·이학영 의원, 시인 안도현씨, 김민영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 김영경 전 청년유니온 위원장,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 제윤경 대표 등이 참여합니다. 당내 인사로는 호남 출신의 4선 이낙연 의원과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 의원이 함께 합니다.
오케스트라에 비유하자면, 이 10명의 공동선대위원장들이 훌륭한 하모니를 낼 수 있을까요? 10명의 선대위원장들이 당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이번 대선을 지휘하기로 했다는데 과연 이들에게 실권이 쥐어질까요?
고위전략회의 관계자 "나를 밟고 가라"이날 브리핑을 마친 우상호 단장과 몇몇 기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아주 진지하게 의견을 나눴습니다. 기자들은 우 단장을 향해 "과연 제대로 되겠는가"라는 의문부호를 날렸고, 우 단장은 기자들에게 "너무 삐딱하게만 보지 말아라,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와야 세상을 만나듯이 우리도 여러 위험이 있지만 그 위험을 무릅쓰고 이번에는 정말 정치개혁을 할 생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우 단장은 이날 공동선대위원장단과 별도로 후보의 직속 자문기구로 '고위전략회의'를 신설한 점도 주목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함께 뛰었던 대선후보들이 올 대선에서 각자 자신들이 할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손학규 고문은 강원도에서, 정세균 고문은 호남에서, 한명숙 전 대표는 해외와 그 밖의 지역에서 등등 각자 정권교체를 위해 뛸 것이라면서, 고위전략회의 관계자 중에는 "나를 밟고 가라"고 한 인물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누가 '나를 밟고 가라'고 했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그 말 속에는 큰 뼈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선관위에 등록조차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정치자금법상 정당에 배부되는 국고보조금 150억원도 받지 못하고, 이 돈이 없으면 당을 유지할 기력을 잃게 되지요. 딱히 돈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제1야당인 민주당이 대선후보도 못내는 상황이 되면 과연 이 정당을 유지할 이유가 있냐는 일종의 '민주당 무용론'이 일 수 있겠지요.
이 위기감이 민주당의 개혁파에게 명분과 자리를 준 것 같습니다. 공동선대위원장단에 친노 인사들이 빠진 이유 같습니다. 민주당 일각에선 "친노 인사들의 불만이 상당하다"는 평이 나돕니다. 그래도 빼고, 밟고, 타고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당이 살고 후보가 살고 정치가 살려면, 계파의 이익은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를 본 것일까요?
선대위원장단 명단에는 친노가 없지만 비서실을 장악하고 있어 사실상 모든 의사결정의 핵심에 '비서실'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지만 우 단장은 "일체 권한이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모든 권한은 선대위원장단에게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10명의 선대위원장단에 정말 핵심그룹이 없을까요? 당내인사와 시민사회 인사간 권한과 역할의 배분이 정말 1/N로 될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소위 전략가로 알려진 이인영, 박영선, 김부겸 전 최고위원들이 일종의 핵심그룹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