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잊은' 학교 풍경1년 365일 불야성을 이루는 곳, 학교의 불빛이 유난히 환하다.
서부원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푸른 하늘과 상쾌한 바람이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참 좋은 계절이다. 아이들이 공부하기에도 1년 중 요즘만한 때가 없다. 칼바람 부는 겨울은 말할 것도 없고, 황사에다 꽃가루 날리는 뿌연 봄과 무더위로 꿉꿉한 여름에 어찌 견줄까.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부르는 건 그래서다.
그러나 공부하기에 좋은 계절은 잠자기에도 그만인 모양이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아이가 여름방학 보충수업 때보다 더 늘어난 것 같다. 무슨 '닭병' 환자도 아니고, 등교하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점심시간 때까지 줄곧 자는 경우도 학급마다 드물지 않다.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교실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일단 자리에 가서 흔들어 깨운다. 그래도 잠을 못 이기면 찬물로 세수를 하라며 내보내고, 아예 코를 고는 등 수업에 적잖이 방해가 된다 싶으면 교실 뒤로 가서 선 채 수업을 받으라고 벌을 주기도 한다. 그래봐야 교실 뒷면에 설치된 사물함에 기대 꾸벅꾸벅 졸기 일쑤지만, 적어도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는 되지 않으니 그나마 만족할 밖에.
어떻든 엎드려 자는 아이들과 씨름하다 50분 수업시간이 어느새 지나 버린다. 그들이 학교에 와서 대놓고 잠자는 이유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우선 늦은 밤까지 학원과 독서실을 순례하는 사교육 열풍 탓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학교마다 대학입시 위주로 편성된 획일적인 교육과정과 완고한 학벌 구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그런가 하면 무사안일에 빠져 구태의연한 수업방식을 고수하는 교사들에게 화살을 돌릴 수도 있겠다.
'여관'이 돼버린 학교, 단박에 깨어날 방법은 없을까또 다른 이유는 없을까. 과연 학벌 구조가 완화되어 교육과정이 정상화되고 교사가 열과 성을 다해 수업을 하면, 언제부턴가 '여관이 돼버린' 학교가 단박에 '깨어날' 수 있을까. 조심스럽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이 학벌 구조와 입시, 사교육 때문인 건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까닭이다.
한창 클 나이인 아이들에게 잘 먹고 잘 자는 건 매우 중요하다. 요즘 아이들에게 밤과 낮의 구분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고등학생들에게 야간자율학습은 정규 교육과정으로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고, 교문을 나서는 밤 10시 정도야 초저녁쯤으로 여긴다. 집에 가는 길 시내는 대낮 같이 환하고, 시내버스도 웬만하면 자정 너머까지 운행된다.
이 시간까지 공부하자면 아이들에게 밤참은 필수다. 아침은 걸러도 밤참은 꼬박 챙겨 먹는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요즘 아이들은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밤참, 이렇게 네 끼를 먹는 셈이다. 한밤중 배를 든든하게 채운 후 학원과 독서실로 향하는데, 고등학생이라면 새벽 1~2시는 되어야 귀가한다. 하루 일과가 이때쯤 비로소 끝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다음 날 일과 시작 시간은 늦어도 6시다.
학원과 독서실에 가지 않는 아이들의 밤 시간은 과연 여유로울까.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하교 후 다음 날 일과가 걱정돼 바로 잠을 잔다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대개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게임을 하거나 TV로 재방송하는 스포츠 경기와 교육방송 강의를 시청한다고 답했다. 밤참을 먹는 것도,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학원과 독서실 다니는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라진 지 이미 오래라고 여겼던 '4당 5락(네 시간 자고 공부하면 합격하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속설)'이라는 말이 요즘 아이들의 평범한 일과 속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누구는 평생 네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지만, 성장기 아이들에게 하루 4~5시간 잠으로 하루 종일 견뎌내라는 건 누가 봐도 무리다.
이른바 '좋은' 대학 가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아껴서라도 공부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풍경일 테지만, 어느덧 공부에 별 뜻이 없는 아이들조차 똑같이 '4당 5락'의 일과를 보내게 된 것이다. 학원과 독서실 대신, 게임과 TV 시청을 하는 게 그 차이라면 차이다. 낮보다 밤에 눈이 더 초롱초롱해지는 아이들이 시나브로 늘어나고 있다.
사찰 체험에 간 아이들, 제일 힘든 게 뭔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