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산 MSDS에 기록된 누출 시 대처방법과 위험성. MSDS만 잠깐 살펴봤더라도 이 같은 사태까지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산업안전공단
하지만 대응방법의 변화 없이는 '도로아미타불'이다. 매번 그러했듯, 또다시 방재시스템을 재정비한다는 명목 아래 장비구입으로 거액의 예산만 투입하고 누출사고 관련자 몇 사람을 시범케이스로 사법처리하는 척하다가 흐지부지될지 모를 일이다.
전국의 모든 유독물 사용업체를 폐쇄하고, 모든 소방대원에게 다른 업무 제쳐놓고 수천 종의 유해물질 방제법을 달달 외우게 하고, 모든 탱크로리차는 고속도로 진·출입 시 톨게이트에서 허가를 받고 운행해야 한다면 모를까.
제2, 제3의 불산 사태가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또다시 '소방인력과 예산 부족' '미온대처가 화 불렀다' '알고 보니, 절차 무시' 등 이런저런 '소설' 써가며 갑론을박할 것인가.
만약 이번처럼 바로 내 눈앞에서 유독 약품과 가스가 누출됐다고 생각하면? 누구든 앞에서 눈도 못 뜨고 숨 막히는 유독가스가 퍼져 나온다면? 그야말로 정신을 놔 버리고 말 것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수습절차 무시나 미온 대처의 문제라기보다 무엇이 유출됐는지, 어떤 성질을 가진 화학물질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일단 물부터 뿌린 대처였다고 생각한다.
출동한 소방당국은 부식성이 강한 불산을 제독시키기 위해 알칼리약품인 소석회를 뿌리고 물을 뿌려 중화를 위해 노력했다고 했지만, 불산이 보다 빠르게 증발돼 이로 인한 2차 피해를 더 키우고 말았다. 독성가스 유출사고에 따른 취급상 주의사항이나 응급방제요령 등에 관한 MSDS만 살펴봤더라도 이 같은 사태까지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각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화학제품에 대해 ▲ 성분과 위해성 여부 ▲ 취급 및 저장방법 ▲ 사고 시 대처 요령 ▲ 누출 및 화재 시 대응법 등을 적은 MSDS를 사업장 내 비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도 거의 대부분의 화학제품 제조업체에서는 판매와 유통과정에서 해당 약품의 시험성적서와 MSDS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유독물 운반카드가 없다면? 차량외부 부착표시 활용하라특히 3~4장으로 돼 있는 이 문서는 해당 약품의 화학적 물성과 위험성, 그에 누출되는 상한 기준선까지 모두 정해놨고, 운송 시 누출사고나 화재 발생 시 대처 방법도 모두 기록돼 있다. 결국 MSDS를 통해 얻은 단 1분의 방제요령만 습득해도 사고 발생 시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는 확률은 수십 배로 높아진다. 혹시라도 현장에 MSDS가 비치돼 있지 않다면? 인터넷을 사용해 산업안전공단이나 관련 업체 누리집에서도 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이 기사 하단에서 불산 MSDS를 내려받을 수 있다).
또, 현재 일정 수준 이상의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은 화학 사고가 발생했을 때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인 '자체방제계획'이라는 제도로 관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염산의 경우, 보관 및 저장 수량이 20톤 이상일 경우에는 자체방제계획 수립대상이다.
여기에는 ▲ 취급유독물의 유해성 자료 ▲ 사고 시 응급조치방안 ▲ 사고 시 주민의 대피요령 등이 반드시 기재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기준량 이하의 소규모 사업장은 사고 자체방제계획서 적용에서 제외돼 있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