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헤이리 근대사 박물관에서 만난 반공시대 유물과거의 추억이 아니다. 박물관에나 있을법한 황당한 발상이 다시 거리로 나와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진짜 간첩은 못 막는 국방부가 엄한 국민만 잡는 세상인 것이다.
고상만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오라.'
초등학교때 참 많이 불렀던 동요입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닌 유신 말기에도 학교 음악시간에 가르쳐주고 불렀던 노래입니다. 그런데 역시나 국방부의 신고 기준으로 보면 선생님과 학생들이 조직사건으로 얽혀 몽땅 잡혀갈 상황입니다. 통일을 이야기하면 잡혀갈지 모른다며 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인가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 외에 달리 선택할 길이 없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기본권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 민주주의가 이러한 기본권을 부정하고도 민주주의 국가임을 내세울 수 있을까요. 보수 세력들은 당과 수령을 비판할 수 없는 북한은 민주주의가 없는 독재 국가라고 비난하면서 정작 국방부는 그런 북한이 부러운가 봅니다. 그들처럼 우리나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나라라고 생각하는지 정말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그제야 이해가 갔습니다. 누리길 곳곳에 지나치게 많다 싶도록 '신고 안내 표지'가 부착되어 있었는데 그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 표지의 용도가 신고를 안내할 목적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습니다. 즉, 천안함 사건을 의심하고 연평도에 대해 어쩌구 하는 행위, 그리고 통일을 말하고 현 정부를 비판하는 행위를 하면 잡혀갈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경고용이 진짜 목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상식 이하의 발상과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요.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정녕 '민주주의 인권 국가'라고 자신할 수 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우리나라가 왜 이 지경이 되었나요. 아내와 즐겁게 걷던 누리길 위에서 끝내 분통이 터졌습니다.
한편, 그동안 국방부가 보여준 행태를 돌아보니 사실 놀랄 일도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반 유신, 반 독재 민주화 투쟁도 '종북세력'이고 합법적인 교원단체인 '전교조'에 대해서도 종북단체라며 규정했던 국방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생각이 다른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일이 아니라 그냥 '적'이며 이는 잡아가둬야 할 대상인 듯 합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자신들이 지켜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목표를 잃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켜야할 '민주주의와 인권'이 아닌 이 소중한 가치를 유린하는 반대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자신들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는 국방부가 이제는 박정희 유신 독재와 전두환 군사 독재 시대처럼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체력이 이렇게 허약한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았던 그때 저에게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지 않겠냐며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누가 집권을 하더라도 이미 우리가 누려온 이만큼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다시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발전하는 속도가 더디거나 멈출수는 있겠지만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상황에서 아무리 그들이 뭐라해도 다시 과거 군사독재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큰 문제가 없다고 나는 본다."반성합니다. 진심으로 반성합니다. 그리고 저는 말합니다. 잘못된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할 자유도 없는 나라는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다시 행동해야할 때임을 생각합니다.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서는 안돼그래서 저는 제안합니다. 이 나라가 민주주의와 인권이 보장받는 나라가 되도록 다시 뛰자고 말입니다. 장준하 선생이 유신 헌법을 개정하자는 서명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군사법정에 세운 후 무려 15년형을 때려버리는 그런 시절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아무 죄도 없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8인을 필요에 의해 죽여버리는 그런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서도 안됩니다.
또한 정권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쓰지도 않은 유서를 대신 써줬다며 강기훈을 잡아간 그런 정부도 안되며, 먹고 살고자 생존권 싸움을 하던 철거민을 농성 하루만에 경찰 특공대를 투입하여 서울 한복판에서 참혹하게 죽게하는 정부 역시 우리가 선택할 정부가 아닙니다. 저는 분명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저는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이런 말도 못 하는 나라라면 이제 저를 잡아가십시오.
총을 가지고 있으면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충동은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국방부는 자신들이 가진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더 이상 이런 황당한 신고 안내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아내와 함께 도란 도란 대화를 나누며 걷던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 국방부에 요구합니다. 저는 아내와 통일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가진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폭력적인 방법만 제외하고 누구와라도 어떤 주제이든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줘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국민이 가진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입니다. 그리고 이는 그 누구도 제약해서는 안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처럼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제2조처럼 국민은 억압의 대상이 아님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민주주의 만세'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외쳤다는 이유로 좌익사범일지 모르니 신고하라는 또 다른 국방부의 전단을 보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웃을까요. 19세기적 발상 속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방부를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해 '규탄'합니다. 더 이상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별로 기대는 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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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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