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의 능행사 재현을 환영하는 시민들
최병렬
한편, 정조대왕은 1789년 아버지 사도세자 묘소를 화산(花山)으로 이장한 후 모두 13번에 걸쳐 화성을 방문하는 능행 거둥길(임금의 나나들이길)에 나서 처음에는 남태령과 과천을 지나 안양의 인덕원을 지나는 과천로를 이용하다가 즉위 20주년을 맞는 1795년 6차 원행부터 시흥과 안양 석수동을 거쳐 구 군포사거리를 지나는 시흥로(현 만안로)를 이용했다.
특히 1795년 능행차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원행을 떠나 당시 상황은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고스란히 기록돼 동행한 사람은 1807명이고 말이 796필이었으며, 행차의 전 과정에 동원된 사람은 5661명, 말이 1417필이었다고 한다.
정조대왕의 능행차시 왕의 숙박과 휴식을 위해 '행궁'을 지었으며 다리를 놓기도 했다. 현재의 안양역 인근인 안양1번가 골목길에는 안양행궁이 있었다. 안양행궁은 현재 그 터 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그 자리에는 표지석을 세워 위치만을 확인할 수 있다.
안양시 석수동에 있는 만안교 역시 정조의 행차를 위해 지어진 건축물이다. 만안교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해 새로운 시흥대로를 만들면서 석수동의 개천을 편히 건너도록 하기위해 축조한 조선 후기 대표적인 홍예석교(虹霓石橋)다.
만안교는 1795년(정조 19년)에 당시 경기관찰사(京畿觀察使) 서유방이 왕명을 받들어 전국의 석수쟁이들을 불러모으고 인근 삼성산 일대의 돌을 채취하여 3개월의 공역 끝에 이를 완성하였다. 현재는 도로 확장으로 약 200여 미터 아래로 이동하여 다시 축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