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 있는 아이, 연예인 한 번 시켜보실래요?

[초보 아빠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20] 부모의 욕망을 정조준한 사람들

등록 2012.10.22 17:43수정 2012.10.2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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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까꿍이가 좀 예쁘지


 장난기 가득한 눈빛의 까꿍이
장난기 가득한 눈빛의 까꿍이정가람

몇 주 전, 아내가 뜬금없이 긴 문자를 하나 보내왔다. Y엔터테인먼트라는 곳에서 자신의 블로그에 쪽지를 남겼는데 나도 한 번 보라며 전달한 것이다.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안녕하세요. Y엔터테인먼트 캐스팅 사업부 ooo 이사입니다. 미니홈피에서 아이 사진을 보았습니다. 이미지가 좋아 이렇게 쪽지를 드리는데요, 실물 미팅을 통해 아이의 실물과 성향 테스트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진행하는 CF나 의류화보 쪽 이미지가 맞는다면 이쪽으로 진행시켜 보고 싶네요. 갑작스레 연락 드려 당황스러우실 테니, 홈페이지 한 번 둘러보시고 저희가 어떤 회사인지, 그리고 아이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한 번 둘러보시고 궁금한 것 있으시면 저희 담당자에게 연락주세요."

속칭 캐스팅이었다. 길에서 하면 길거리 캐스팅이라고 하니, 인터넷 캐스팅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까꿍이가 예쁘니까 연락주었다는 것인데 문자를 처음 본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내 딸 자식 예쁘다는 것인데 누가 기분이 나쁘겠는가. 다만 아이의 얼굴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너무 많이 알려진 건 아닌가 살짝 미안할 뿐.

우선 문자에 적혀 있는 Y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를 살펴보았다. 조금 조악한 수준이었는데, 그곳에는 수많은 유아들의 프로필 사진들이 등록되어 있었다. 부모의 마음으로 보기에는 우리 까꿍이보다 눈에 띄게 더 예쁜 아이들도 없는 것 같은데, 이거 진짜 우리 아이가 모델이나 연기자로 데뷔하는 거 아냐?

 포즈는 다양하게
포즈는 다양하게이희동
퇴근한 뒤, 위와 관련하여 아내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나도 예전 회사를 다니면서 자신의 딸을 드라마에 출연시킨 적 있는 화물 운송 기사를 본 적이 있었지만, 어쨌든 아내는 뮤지컬 작가로서 선후배가 연예계 쪽에 좀 있으니 저런 아역 전문 매니지먼트사가 어떤 곳인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내에게 질문을 하면서도 나는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고 있었다. 막상 카메라 테스트를 받는데 아이 본인이 안 하겠다고 한다면? 아이가 연예계에 데뷔하면 내가 회사 그만 두고 따라다녀야 하는가? 아이가 계속 연예인을 한다고 하면 녀석에게는 10대 학창 생활이 없어질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켜야 할까?

그러나 이렇게 들떠 있는 나와 달리 아내는 무덤덤, 아니 시큰둥하기까지 했다. 이유인즉슨 그녀의 선배 중 이런 사업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연기를 하려다 포기한 선배들이 마지막에 학원을 하나 차리기도 하는데, 그들은 연예계에 작가나 PD로 있는 동기나 선후배를 찾아가 자기 학원생 중 한 명만 꽂아달라고 애걸복걸하고, 그게 성공하면 그 케이스를 크게 광고한 뒤 학원생을 모집하여 돈을 번다는 것이었다. 유아를 상대로 한 엔터테인먼트 사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아내.

 혼자서도 잘해요. 공익광고도 가능하다
혼자서도 잘해요. 공익광고도 가능하다정가람

아내의 설명은 충분히 납득할 만큼 사실적이고 합리적이었다. 비록 일말의 환상을 갖고 그래도 설마 했지만 아내의 이야기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어쩌겠는가. 그것이 작금의 현실이며 우리 사회인 걸. 다만 난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기회가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기만 바랄 뿐이었다. 이런 복잡다단한 아빠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서 자기는 TV 나가기 싫다며 변죽을 울리는 까꿍이.

며칠 뒤, 난 Y엔터테인먼트에 전화를 했고 전화를 받은 이는 지금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며 메일 주소로 아이 사진 3~4장을 보내주면 확인하고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사진을 엄선해서 보낼 줄 것을 부탁하였고 이후 전화를 기다렸다. 과연 우리 까꿍이는 TV에 나올 수 있는 걸까?

아이에게 투자해야 합니다

사진을 보낸 뒤 일주일 쯤 됐을까? 매니지먼트 회사에서는 깜깜무소식이었다. 충분히 검토하고 남을만한 시간인 듯한데 연락이 없었다. 사진 속 까꿍이가 별로였던 걸까? 아님, 더 이상 모델 뽑을 계획이 없는 걸까?

 아내가 엄선했던 사진
아내가 엄선했던 사진정가람

사진을 골랐던 아내에게 너무 이상한 사진만 준 거 아니냐며 괜한 핀잔을 주고 있던 무렵, 메니지먼트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진은 잘 받아서 검토했고, 까꿍이와 함께 일을 하고 싶으니 한 번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오, 드디어 데뷔인가? 그러나 담당자의 설명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한 번 회의를 하자는 것 외에 말이 길어지기 시작했는데, 바로 돈 문제였다. 그러면 그렇지,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본론이려니.

 음식 CF가 들어오지 않을까?
음식 CF가 들어오지 않을까?정가람
그들의 설명은 깨알 같았다. 아이가 모델로 데뷔하기 위해서는 최소 2년 7개월의 트레이닝이 필요한데 2년 동안의 비용은 자신들이 투자할테니, 7개월의 비용은 부모가 대라는 것이었다. 교육은 1주일에 하루 3시간, 과목은 연기와 모델, 댄스로 이뤄지며 1개월의 비용은 34만원이라고 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대충 짐작은 했으나, 막상 설명을 듣고 나니 더욱 황망했다. 우선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상대로 투자 운운하는 것 부터가 기분을 상하게 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 하지만, 아무리 국가마저도 교육을 운운함에 있어 인적 자원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네살배기 아이에게 투자는 너무한 것 아닌가.

물론 투자라는 단어가 아이의 인생을 위해 좋은 의미로 쓰일 수도 있지만, 부모도 아니고 일반 사기업이 쓰는 건 결국 이윤의 문제일 터, 아이를 돈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천박하고 음험한 시각이 불쾌했다. 그것은 나 역시도 그 시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책감 때문이기도 했다.

 엄마 먹고 싶어?
엄마 먹고 싶어?정가람

또한 그들이 가르치겠다는 과목을 보자. 연기에 댄스, 모델 등이란다. 네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카메라 앞에 서게 하기 위해서는 최적의 조합일 테지만, 부모가 되어서 자기 자식들에게 그 과목들을 우선한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었다. 물론 아이가 그쪽으로 재능이 있고 의도치 않았는데도 끼가 보인다면 고려해 보겠지만, 그래도 세상 모든 걸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그 시기에 오직 부모들의 욕망 때문에 앞선 과목들에 집중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잔인한 일인 듯 했다. 부모가 자식의 삶을 아주 어릴 때부터 구획할 권리는 없지 않은가.

연예인이라는 사다리

 스마트폰 광고도 가능하다
스마트폰 광고도 가능하다정가람
그러나 문제는 많은 부모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식들을 그런 메니지먼트 회사에 보낸다는 사실이었다. 그와 비슷한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들을 그런 말도 안 되는 기관에 맡기고자 하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많은 10대들이 끊임없이 오디션을 보는 것과 똑같은 논리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계급상승이 불가능한, 1%와 99%의 삶이 고착되어버린 사회. 연예인이 되는 것은 이 희망 없는 계급사회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계급상승의 사다리일 지도 모른다. 열심히 공부하여 소위 '사'자를 달아도 주위에 백이나 돈이 없으면 사회적 지위가 생각만큼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니던가.

따라서 어떤 부모들에게 아이들의 연예계 진출은 하나의 로또와 같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직 많은 시간이나 노력을 쏟지 않은 만큼 그것은 한탕주의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를 이용하여 돈을 많이 벌어 신분상승할 수 있다는 욕망. 결국 현재 엔터테인먼트산업은 그와 같은 부모들의 욕망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까꿍이는 연기 중
까꿍이는 연기 중정가람

물론 모든 아역 연기자들과 모델이 부모들의 욕망에 기초하여 탄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아이들을 이용하고자 하는 천박한 욕망과 그 욕망을 먹고 사는 이들이 존재하는 이상, 우리는 그 연결고리를 감시해야 한다. 그와 같은 욕망이 사회에 널리 퍼질수록 많은 이들의 삶은 피폐해질 것이며, 아이들의 동심은 망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까꿍아, 어쨌든 나중에라도 엄마, 아빠가 연예인이 될 기회를 놓쳐버렸다며 탓하기 없기다. 넌 분명 TV에 나오기 싫다고 했으니까. 히힛.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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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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