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자료관 독립운동가를 많이 배출한 목포정명여중 독립자료관
이윤옥
목포정명여학교는 1919년 4월 8일 목포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학교로 그 어느 곳보다 민족정신이 투철했다. 국가보훈처는 이 학교 출신 7명을 광복 67주년인 올 8월 15일 애국지사로 포상했다.
이들은 곽희주(19살), 김나열(14살), 김옥실(15살), 박복술(18살), 박음전(14살), 이남순(17살), 주유금(16살)으로 "1921년 11월 13일 전남 목포의 정명여학교 재학 중 독립만세시위를 감행할 것을 협의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으며, 다음 날 목포 시내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가 체포"된 분들이며 각각 징역 6~10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나라를 빼앗긴 울분 속에 지내던 뜨거운 피의 낭자들은 1차 세계대전 후 세계열강 사이에 동아시아 질서 재편 등을 논의한다는 워싱턴회의 소식을 듣고 조선의 독립문제가 상정되도록 촉구하는 마음에서 태극기를 들고 교문을 뛰쳐나갔던 것이다.
"(전략) 아! 우리 동포들아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니 때를 당하여 맹렬히 일어나 멸망의 거리로부터 자유의 낙원으로 약진하라. 동포들아 자유에 죽음이, 속박에 사는 것보다 나으리라, 맹렬히 일어나라!" - 1983년 천장 공사 중 발견된 격문 '우리 이천만 동포에게 경고함' 가운데격문을 읽고 있노라면 피가 끓는다. 이천만 조선인 그 누구의 가슴에도 끓어올랐을 피! 그것도 나이 어린 여학생들이 앞장섰음을 역사는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올해로 12회째 목포에서는 4·8 독립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하고 있으며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그날의 함성을 새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