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대왕의 꿈>.
KBS
서기 7세기 초반 어느 해의 음력 1월 5일 아침, 신라 수도 서라벌의 귀족 저택. 잠자리에서 일어난 이 저택의 아가씨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신기한 꿈을 꾸다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가씨는 꿈에서 신라인들이 신성시하는 서악이란 산에 올랐다. 거기서 아가씨는 서라벌 시내를 바라보며 오줌을 누었다. 서라벌은 금세 오줌 물에 잠기고 말았다.
꿈을 꾼 이 아가씨는 김보희. 김유신의 첫째 여동생이자 훗날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처형이 될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꿈은 신라의 국모가 되는 꿈이었다. '대왕의 꿈'이 아니라 '왕후의 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왕의 처가 아니라 처형이 되고 말았다.
고대 이래로 동아시아에서는 산악숭배가 특히 강력했다. 산이 하늘과 인간을 매개한다는 샤머니즘적 혹은 무속적 관념 때문이었다. 신이 산을 통해 인간세계에 강림한다고 생각했기에 산을 신성시했던 것이다. 산신 할아버지를 숭배하는 관념도 거기서 생긴 것이다.
이 때문에 고대국가들은 다섯 개의 주요 산인 오악에서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냈다. 신라도 마찬가지였다. 신라의 오악 중 하나가 바로 서악이었다. <삼국사기> '제사' 편에서는 계룡산이 서악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백제가 멸망된 뒤의 일이었다. 김보희가 꿈을 꿀 때만 해도 신라의 서악은 오늘날의 경주시 효현동에 있는 선도산이었다.
이처럼 신성한 산에 올라 서라벌을 '암모니아 바다'로 만드는 꿈을 꾸었으므로, 잠자리에서 일어난 김보희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을 것이라고 추론이 가능하다.
서라벌을 '암모니아 바다'로 만든 꿈 언제부터 생긴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침에 꿈 이야기를 하면 복이 나간다고 한다. 재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삼국유사> 김춘추 편에 따르면, 이날 아침 김보희는 동생 문희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이야기를 하는 보희나 이야기를 듣는 문희나, 그 꿈을 대단하게 생각했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두 자매는 뭔가 대단한 행운을 가져다줄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행운의 가치에 대해서는 두 자매는 판단을 달리했다. 보희는 그 가치를 비단치마 정도로 이해했고, 문희는 비단치마보다 높은 정도로 이해했다. 문희가 비단치마를 주고 꿈을 사겠다고 하자 보희가 얼른 동의한 것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감정평가사처럼 '꿈 평가사'가 있었다면, 김문희는 아주 우수한 '꿈 평가사'가 됐을 지도 모르겠다. 열흘 뒤인 1월 15일, 김유신은 왕족인 김춘추와 축구를 하다가 일부러 춘추의 옷끈이 떨어지도록 만든 뒤, 그것을 핑계 삼아 여동생이 그 옷을 꿰매주도록 했다. 미래에 왕이 될지도 모르는 김춘추를 여동생과 연결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김유신은 처음에는 큰 동생인 보희를 소개해주려 했다. 하지만, 보희는 거절했다. 김춘추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보희는 그런 식으로 남자를 만나는 게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회는 문희에게 넘어갔고, 문희는 훗날 왕후가 되었다.
참고로, <삼국유사> 이전에 나온 서적에는 그때 마침 김보희가 몸이 안 좋아서 김춘추를 만날 수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삼국유사>에 적혀 있다.
두 자매가 꿈을 매매한 일은 결과적으로 왕후 자리를 매매한 일이 되고 말았다. 왕후 자리가 비단 치마 값에 팔렸으니, 그 어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도 이런 바겐세일을 시행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김문희가 그저 장난삼아 꿈을 매입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는 그 꿈이 왕후가 되는 꿈이라고까지는 판단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 꿈이 비단치마 이상의 값어치가 될 것이라고는 평가했다.
다시 말해, 김문희는 언니의 꿈을 상당히 현실적으로 이해했다. 꿈에 대한 고대인들의 태도를 보면, 문희가 꿈에 대해 현실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 당시로서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고대 중국의 역사를 기록한 <서경>의 '열명' 편에 따르면, 은나라 제23대 군주인 무정은 하늘신(상제)이 자기에게 훌륭한 인재를 내려주는 꿈을 꾸었다. 그는 그 인재를 찾아낼 목적으로, 꿈에서 본 인재의 얼굴 생김새를 전국에 널리 공표했다.
<서경> 해설서인 <서경집전>에서는 무정이 몽타주를 전국에 배포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찾아낸 인물이 부열이란 이름을 가진 인재였다. 전설은 무정을 보좌하는 훌륭한 재상이 되었다.
어쩌면, 무정은 꿈 이야기가 있기 전부터 부열을 알았을 수도 있다. 무명의 인재를 단번에 재상으로 기용하는 데 대한 정치적 반발을 무마하고자, 그런 쇼를 벌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꿈에서 본 인재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공권력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꿈은 현실과 정반대'라는 상식이 통하는 현대 국가의 통치자 같았으면, 자신의 꿈을 명분으로 공권력을 동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정과 그의 백성들은 그 같은 공권력 동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것은 고대인들이 꿈에 대해 꽤 현실적인 의미를 부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단 주고 꿈을 산 문희... 꿈을 통치에 이용한 왕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