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공원지킴이 김대선씨무려 35년간 월명공원을 찾은 대선씨는 이제 걸어다니는 월명공원 백과사전이 됐다.
박영미
입술을 떼자마자 술술 흘러나오는 월명공원 자랑. 우스갯소리로 '월명공원과 결혼한 것 아니냐'는 말에 그는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과 공원의 혼인? 다소 어색하지만 이를 증명해주는 일화가 있다.
지난 2007년, 월명공원에서 철봉을 하다 허리를 심하게 다친 그는 큰 수술을 하게 됐다. 수술을 마친 후 마취에서 깨어날 때 그의 외마디 외침이 의사를 당황케 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환각 상태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이름을 부른다는데, 그는 뜬금없이 "월명공원 파이팅"을 외쳤다고 한다. 천사표 아내가 서운했을 정도였다니 그의 월명공원 사랑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20대 후반 무렵부터 현재까지 월명공원과 동고동락한 대선씨. 무려 35년이라는 세월은 그를 '걸어 다니는 월명공원 백과사전'으로 만들었다. 월명공원의 6개 봉우리(점방산 138m·설림산 116m·장계산 110m·월명산 101m·석치산 98m·할매산 95m)의 위치는 그의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다. 1912년 6월 18일 착공돼 1915년 1월 4일 준공한 수원지(현 월명호수)에 대한 역사, 변화 기록까지 세세히 기억하고 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35년 동안 월명공원에 머물며 공원과 함께한 그에게는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가 이토록 월명공원을 사랑하는 이유는 뭘까.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그는 진솔하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실 저는 현재 밤업소에서 키보드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나름 음악인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때로는 색안경을 끼고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40년 동안 이 길을 걸어왔고,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에 자긍심을 갖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업소 자랑 좀 하고 싶은데 그건 오버겠죠(웃음). 월명공원을 찾게 된 것은 직업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밤에만 일하니까 낮에는 한가하더라고요. 20대 중후반 무렵, 기계체조 운동에 빠져 월명공원을 찾아 운동도 하고, 산도 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낮에 운동하고, 저녁에 일하는 건 여전합니다. 단, 2007년 사고로 기계체조는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지만요."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2007년 사고는 그에게 크나큰 시련이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판정도 받았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그는 지금도 여전히 하루 2시간 이상 산행을 고집한다. 그는 말한다. "잃었던 건강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월명공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 고마움을 월명공원 환경보호 등의 봉사활동으로 대신하고 있단다. 그런 그는 월사모 창립자이자 현재 부회장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공원과 함께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