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울산공장 명촌 중문앞 송전탑 고공농성장의 나무판자 위에 26일 비계가 마련됐다
박석철
연극이 끝나면 무대에는 적막이 감도는 법, 어젯밤 이곳에서는 영남권 노동자 대회를 포함한 현대차 울산공장 2차 포위의 날 행사가 있었다. 전국에서 노동자, 시민사회가 모여 치러진 1박 2일 행사는 이날 오전 9시가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하지만 고공 농성 중인 두 비정규직노동자를 응원하러 각지에서 모인 동지들이 떠난 자리는 쓸쓸함마저 감돌았다.
송전탑이 가까워지면서 색다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 와서 봤던 그곳과는 다른 장면이었다. 송전탑 17m 높이에 있던 최병승(36) 조합원, 그보다 3m 더 높은 곳에 있던 천의봉(31)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사무차장의 나무합판 농성장 위에는 새로 널직한 비계가 마련됐다.
처음 송전탑에 올라갈 당시, 이 둘은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넓이의 나무합판에 밧줄로 몸을 감아 농성을 시작했다. 이어 농성장은 2cm 두께의 2㎡가 채 안 되는 나무합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동안 비가 오면 나무합판이 젖어 위험하다는 우려가 나왔었다.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듯 넓어 보이는 비계가 마련된 것이다.
지난 21일, 비가 올 것을 우려해 비닐 커버를 철탑 위로 올리는 것조차 막았던 회사 측이 철판이 올라가도 막지 못한 것은 왜일까? 지난밤 1000명이 넘는 연대 동지들이 두 조합원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까지 이어진 문화제 행사를 송전탑 위에서 함께 했는 듯, 철탑 위 두 조합원은 아침 단잠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외롭지 않았다. 새로 마련된 비계에서, 침낭을 뒤집어 쓴 두 조합원이 나란히 옆에 붙어 있었다. 위에는 조합원들이 쳐 준 간이비닐도 있어 굵은 빗줄기는 피할 수 있었다.
철탑 아래에는 두 조합원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노조 해고자 15명이 매일 보초를 선다. 그들도 밤새 연대 행사에 동참하느라 아직 침낭 속에 있었다. 기자를 반갑게 맞이한 사람은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우상수 사무차장. 30대 초반의 그는 철탑 위 두 조합원에게 밥과 휴대전화 배터리 등을 올려주는 주요한 보직을 맡았다.
밥은 낮 12시, 오후 6시 하루 두 번 올려주는 데, 음식은 비정규직노조 조합원 부인들이 번갈아 가면서 마련한다.
우상수 사무차장은 "병승이 형과 의봉이가 어젯밤 무척 기뻐했다"고 말했다. 26일 저녁, 비정규직노조에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24일 오후 현대차 울산공장 안에서 경찰에 체포됐던 박현제 지회장의 구속영장이 26일 저녁 기각됐기 때문이다. 철탑 위에 있는 천의봉 사무장의 체포영장도 기각됐다.
어느 조직이든 수장이 잘못되면 조직 전체가 힘을 잃듯, 박 지회장이 체포되고 난 후 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의 걱정이 컸다고 한다. 특히 마음이 여린 철탑 위 천의봉 사무장은 이틀을 불안 속에서 보냈다고 한다.
철탑 농성에서 제일 힘든 것은... 생리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