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최지용
이날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지난 임기 동안의 소회를 털어 놓았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 직후 위원장에 당선된 김 위원장은 오랫동안 '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진보정당'을 강조해왔다. 이를 위해 지난 총선을 앞두고 진보정당 통합논의 과정에서 국민참여당을 제외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선통합을 주장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했다.
또 총선 이후 불거진 통합진보당 비례후보 부실부정선거 논란에서도 사태 수습을 위해 당혁신위원회의 혁신안 수용을 촉구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지만 민주노총은 불타는 절을 보고 있는 심정이었다, 우리의 진정성이 당에 전혀 접수되지 않았고 결국 백약이 무효였다는 절망만 남았다"며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두 번의 큰 정치적 역할에 실패했지만 김 위원장은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와 복수노조, 노동법 개정 등 이명박 정권 들어 악화된 조건 속에서 조직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이전 정권과 차원이 다른 점은 우리를 전혀 상대방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차기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내수를 살려야 하고 노동자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은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최근 민주노총 출신으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캠프로 들어간 인사들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진보정치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며 "진보정치를 재구성하고 통합시키지 못한 책임이 있는 나로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판단을 존중하지만 갔으면 선거용이 아니라 각 후보 진영의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단순히 정치인으로 이미지 변화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가 보기에 그냥 '이탈'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문 후보 캠프에는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 이영주 전 전교조 경남지부장, 이경훈 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이성립 전 권영길 의원 보좌관, 이상현 전 민주노동당 대변인 등이 참여하고 있다. 안 후보 캠프에도 이용식·김태일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 남궁현 전 민주노총 건설연맹 위원장, 곽태원 전 사무금융연맹 위원장, 김영길 전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 이수봉 전 민주노총 부총장, 김형근 전 서비스연맹 위원장 등이 들어갔다.
다음은 김영훈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최근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유가 무엇인가?"민주노총이 직선제 관련해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지난달 임시 대의원대회 무산 이후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 결국 규약에 명시된 직선제 시행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상황에서 직선제 유예안을 대회에 제출했고, 그 이유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규약을 준수해야 할 책임자로서 이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 생각했다. 오히려 무책임한 태도라는 지적도 있지만, 책임논란이 일면 건강한 토론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 민주노총 위원장 직선제가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직선제를 통해 민주노총의 혁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모순은 중앙에서 선거를 철저히 준비할수록 산하 조직들은 어려워졌다. 구체적으로 말해 선거의 기본이 되는 선거인명부 문제다. 누가 선거권자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조합비 납부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부정선거 시비가 없어지는데, 일부 조직들은 조합비 내역을 올리기 어렵다. 대공장처럼 체계적인 곳은 모르지만 화물노동자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나 비정규직 조직들은 체계적으로 하기 쉽지 않다.
반대로 기준을 완화해서 선거를 치르면 기준이 없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발생한다. 직선제를 각 산별이나 산하조직에 맡겨버리면 부정이나 부실 논란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조직이나 조합원을 믿지 못한다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의 16개 가입연맹 중에 절반 정도 직선제를 실시하는데, 그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연맹직선제에서 용인되는 게 있는데 이것을 민주노총의 일방기준으로 맞추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긴다. 현장투표, 모바일, ARS 등 그 방식을 각 조직별 특성에 맞춰야 한다.
어떻게 보면 직선제는 극단적인 다수결의 원칙이다. 잘못하면 승자독식에 따른 중앙패권강화로 나타날 수 있다. 직선제는 조합원의 참여라는 장점이 있지만, 다양성을 해치는 부작용도 있는 제도다."
"직선제, 중요하지만 과도한 의미부여 안 된다"- 그렇다면 현재의 대의원 대회를 통한 간선제를 유지하자는 이야기인가? 현재까지 설명을 들어보면 직선제 유예안이 아니라 폐기안을 말하는 것 같다."현재의 민주노총 위원장 선출제도가 잘못된 형태로 고착돼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한 충분한 논의와 토론이 필요하다. 그래서 직선제 폐지안이 아니라 유예안을 냈다. 직선제는 이론적으로 더 따져봐야 할 게 있다. 직선제가 과연 직접민주주의의 확장인가? 직선제든 간선제든 직접민주주의와는 관계가 없다. 대의민주주의의 수단이고 절차일 뿐이다. 국가와 민주노총은 다르다. 민주노총은 어떻게 보면 연방국가처럼 다양한 조직의 결사체다. 다른 방식의 민주주의도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 대안이 될 수 있는 건 각 연맹별로 광범위한 선거인단을 구성해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 연맹별 특성을 고려할 수 있고 80만 전체 조합원의 참여도 보장된다. 다수결 방식으로 했을 때 발생하는 승자독식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차점자가 수석부위원장, 그 아래 차점자가 사무총장을 맡는 식의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민주노총 위원장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정치방침을 제외하고 큰 차이가 없다. '국가와 자본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공통의 책무가 있기 때문에 후보 사이에서 정책의제가 크게 갈리지 않는다. 그럴 경우 다수결 투표로 뽑는다면, 인물이나 정파, 진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승자독식 구조를 깨고, 소수자와 여성 등 다양한 구성의 지도부를 꾸리기 위해 고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 위원장의 그런 고민이 있다고 해도 2년 9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미리 충분한 토론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직선제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게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것 아닌가? 통합진보당 비례후보 투표 논란에 영향을 받았을 것도 같다."절대적으로 반성하는 부분이다. 중앙집행위원회 차원에서 토론은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직선제에 대한 기대는 분명히 있다. 직선제는 단순히 선거제도를 바꾸는 게 아니라 아주 복잡한 사안이 얽혀 있다. 이걸 전 조합원들과 전 조직적으로 소통하고 토론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물론 조금이라도 빨리 했으면 좋았겠지만, 올해 중반까지도 어쨌든 간에 직선제를 시행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해 와서 선회하기가 쉽지 않았다. 통합진보당 사태에 영향을 받은 것도 맞다."
- 통합진보당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민주노총의 직선제도 정파 간의 이해문제라는 지적이 있다."일부 있다. 위원장에 당선될 때 건강한 정파조직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특정 정파의 소속은 아니지만 정파조직의 지지를 받았던 사람으로 '저를 지지하지 않은 분들과 더 많이 이야기 하겠다'고 했다. '대중의 이해'와 '정파의 이해'가 부딪칠 때는 당연히 대중의 이해에 부합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정파의 이해가 극심하게 드러난 게 통합진보당 사태라고 할 수 있다. 부정부실 선거 논란보다 그 후속조치에서 정파의 이해만 앞세우는 모습은 공당으로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지금 민주노총의 직선제 논의에서도 직선제를 시행해본 지역본부에서는 정파를 뛰어넘어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반대로 일부의 사람들은 직선제가 어렵다고 했다가 갑자기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마치 민주노총이 직선제를 못하면 보수언론에서 떠드는 '직선제도 못하는 조직'인 것처럼 말하며 지도부의 총사퇴를 요구하는 분들도 있다. 마치 직선제가 민주노총 혁신의 모든 것처럼 말하는 식이다. 중요한 사안이지만 직선제의 의미가 과도하게 이야기되는 경향이 있다."
- 유예안이 대의원대회에 제출됐지만 직선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존재한다. 30일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통과가 가능한가? "일단 대의원대회가 무산되면 안 된다. 직선제 유예안이 통과되든 부결되든 결정이 나야 한다. 특정 정파에서 대회를 무산시키기 위한 전술을 쓰지 않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보수 언론의 비아냥거림을 우리가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꼴이 된다. 민주노총의 저력을 믿고 마지막으로 대의원들에게 호소한다. 대의원대회를 성사하고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자."
이정희·심상정 후보에게 한마디... "모르겠다, 노코멘트다"- 통합진보당이 결국 분당의 길을 갔다. 당의 기반이었던 민주노총이 상당히 압박을 가했음에도 막을 수 없었다. "지난 번 인터뷰때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마지막 희망불씨를 살려 통합진보당을 재건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지만 민주노총은 불타는 절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 참담했던 건 우리의 진정성이 당내에 전혀 접수가 안됐다는 점이다.(김 위원장은 이 말을 하고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백약이 무효했다는 절망만 남았다."(관련기사 :
<"진보당에 '노동' 사라지고 '정파'만 남았다">)
-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현재 진보를 지향한다는 정당이 4개(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진보신당, 노동중심당)나 된다. 노동중심의 단일한 진보정당을 주장했던 민주노총 위치에서 보면 참담한 상황 아닌가."나의 민주노총 위원장 출마 배경에는 지난 2008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을 막지 못한 상황이 있다. 그래서 진보정당을 하나로 만드는 역할이 아주 중요했다. 역사적 책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이렇게 돼 참담하다.
그럼에도 진보정당이 통합할 수 있는 방안은 오직 '노동'뿐이다. '노동중심성'은 어느 진보정당이든 똑같이 이야기한다. 민주, 진보, 개혁 같은 단어는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노동' 없이 그것만으로 진보를 이야기할 수 없다. 통합진보당 창당 당시 일부 사람들이 '노동이란 단어로 통합당에 재 뿌리지 말라'고 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 진보정당의 분열된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대선 정치방침은 어떻게 되는 건가?"민주노총이 생기고 처음으로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없는 대선을 맞이하게 됐다. 정치방침은 변함없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다. 다만 대선을 맞아 선거방침을 정해야 하는데, 현 시점에서 무리해 정하기보다 아주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려고 한다.
근대 민주주의의 시작이 노동자들의 투표권 쟁취과정이라 볼 때, 100년이 지났지만 투표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태는 다르지 않다. 1000만 명에 육박하는 노동자들의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들의 투표권을 보장하게 하는 것이 민주노총의 대선방침에 최대 투쟁과제다. 어떤 후보를 지지할 것인가 만큼 유권자, 특히 노동자에게 투표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비정규직에게 투표권이 보장될 때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시작된다."
-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특정후보를 지원하는 방침은 없다는 말인가."지금 당장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선거방침은 중앙집행위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상황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다.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 심상정 진보정의당 대선후보가 출마했다. 두 후보에게 한 마디 한다면."모르겠다. 노코멘트 하겠다."
"대선후보들 노동행보, 진정성 있으려면 현안부터 해결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