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옛 판화책. 기획자연수 때 배워 직접 만든 책
이영미
단 하루라도 들을 수 있다면…돌아오면서 생각해보았다. 내가 단 하루라도 일반인처럼 들을 수 있다면 어떨까? 우선은 제일 먼저 산책가는 숲 속의 나무밑에 서서 그 나뭇잎들이 바람과 사이좋게 흔들리는 소리와 그 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새들의 소리, 그리고 그 나무옆에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싶다. 손을 대어 진동을 느꼈던 종소리와 고향 부산의 바닷가의 파도가 바위에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물새들이 스치는 소리… 내가 만드는 음식들이 끓거나 후라이팬에서 익어가는 소리도 궁금하다. 특별하고 색다른 소리들이 궁금한 것이 아닌 친근한 일상의 그 소리들이다,
기획자 워크숍 때 판화를 찍어서 옛 책을 만들었는데 한지를 매어서 만든 그 책장 넘어가는 소리도 궁금하다. 정말로 듣고 싶은 소리는 내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고 말하는 목소리와 비록 틀린 음정일지라도 내가 부르는 노래소리와 내가 기획한 실버앙상블음악단들의 어머니 합창과 악기연주 소리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촉각으로 소리를 느낀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시각적으로 더 많이 느낀다.
며칠 후면 내가 만든 합창반이 충북대표로 서울에 전국합창대회 본선에 간다. 전국 시도 각 1팀씩 17개 팀이 경연을 하는데 합창단이 생긴 지 반세기가 된 팀도 있다. 우리들은 햇병아리중의 햇병아리지만 초대공연에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이 나오고 우리보다 수준높은 많은 합창단을 경험하게 되어 그저 고맙고 즐거운 소풍이라고 생각한다.
소리를 잃은 청각장애인이 소리를 내는 합창단을 기획했다는게 서울에 소문이 나서 방송팀이 모레부터 내려와서 며칠 동안 따라다니며 촬영한다고 한다. 서류앞에서 낑낑대는 근무모습과 문하생강의와 연구실 작품제작에서 부터 공연하는 어르신들 수발드는 모습까지 모두 다… 그리고 아직도 그 방송팀의 한 분이 갸웃한다고 한다. 소리를 못 듣는데 어떻게 음악기획을… 그 분 탓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청각이 상실되면 자연히 말하기도 힘들고 소리와 관련된 직종은 당연히 못한다는 사회적관념이 뿌리깊다는 증거이다. 이번 다큐가 미화되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로 담백하게 잘 만들어져서 청각이 상실되어도 소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장애인이라도 일반인들과 서로 꿈을 나누며 사이좋게 사람들을 웃게 하는 일들을 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인식개선의 효과가 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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