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공심돈과 화성열차수원 화성의 백미 서북공심돈 앞으로 꼬마기차 '화성열차'가 지나간다.
장유근
할머니께서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 한 말씀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과장된 이야기가 틀림없었다. 아무렴 아버지께서 우리를 죽이기 위해(?) 작고 가는 회초리를 드셨겠는가. 그러나 몇 마디 안 되는 짧은 할머니의 말씀 속에는 세상에 파다한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이 트라우마 처럼 도사리고 앉아 아버지를 향한 원성으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땐 몰랐다. 사도세자가 누구인 지 사도세자의 애비가 누구인 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와 부모님 전부 하늘나라에 계신 지금, 당신이 하셨던 역할을 대신 맡고있다 보니 사도세자의 마음이나 당신의 아들 정조임금의 마음 모두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더군다나 할머니께선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임금이 태어났던 해(1875년) 보다 불과 13년 후에 태어나셨고, 할머니의 친정은 옛 소사 지역(현재 부천시 일원)이었으므로, 당시 한양에서 일어난 정치적인 사건 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물론 할머니가 알고 계신 건 정사가 아니라 야사였을 것이나, 보통의 백성들이 느끼는 사도세자에 대한 평은 노론과 소론 등 피비린내 나는 정쟁이 배재된 인간적인 면이 크게 부각된 모습이었다.
이를 테면 할머니께선 마지막 조선시대 사람이자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던 한 증인이었다. 누가 뭐래도 애비가 아들을 죽이는 일은 패륜이자 입장이 뒤바뀐다 할지라도 동일한 패륜이었으므로, 동시에 삼강오륜(三綱五倫) 등 유교사상을 밥 먹 듯 가르치신 부친께서 새끼들을 엄하게 다스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수원 화성의 성곽을 일행들과 천천히 돌아보면서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은 물론 부모님 생각이 간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