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단풍을 보며 개마고원과 노고단에서 물드는 가을을 노래했지만 사람들은 단풍이 전하는 말은 알아듣지 못한 채 무심히 팔공산 자락을 떠난다.
장호철
동명 송림사 쪽에서 동화사로 넘어가는 순환도로 가로수길이 아름답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온 바다. 그러나 주말이면 차 댈 데가 없을 만큼 사람이 꾄다는 곳으로 선뜻 길을 나서기는 쉽지 않다. 마침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8일 짬이 났다. 밥그릇 덕분에 감독관직에서 면제된 것이다.
송림사를 지나 파계사부터 수태골을 지나 동화사에 이르는 16.3㎞에 걸친 팔공산 순환도로는 '단풍길'이다. 구부러지고 휘돌아가는 이 숲길의 양쪽엔 단풍나무 가로수의 행렬이 이어진다. 군데군데 잎 떨어진 벚나무 단풍도 끼어든다.
단풍의 '단(丹)'은 '붉다'는 뜻이다. 노란 단풍이 있지만 역시 단풍의 본령은 '홍(紅)'인 것이다. 청과 녹과 황, 등 가운데 홍은 말 그대로 '발군(拔群)'이다. 나머지 빛깔은 다만 그 홍의 영광을 받쳐주는 조연이다. 정비석이 '산정무한(山情無限)'에서 '만산의 색소는 홍!'이라고 탄성을 지른 이유는 분명하다.
조반 후 단장 짚고 험난한 전정(前程)을 웃음경삼아 탐승(探勝)의 길에 올랐을 때에는, 어느덧 구름과 안개가 개어져 원근 산악이 열병식하듯 점잖이들 버티고 서 있는데, 첫눈에 비치는 만산(萬山)의 색소는 홍(紅)! 이른바 단풍이란 저런 것인가 보다 하였다. 만학천봉(萬壑千峯)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웃는 듯, 산색은 붉은 대로 붉었다. 자세히 보니, 홍만도 아니었다. 청(靑)이 있고, 녹(錄)이 있고, 황(黃)이 있고, 등(登)이 있고, 이를테면 산 전체가 무지개와 같이 복잡한 색소로 구성되었으면서, 얼른 보기에 주홍(朱紅)만으로 보이는 것은 스펙트럼의 조화던가? - 정비석 "산정무한" 중에서
평일이었지만 단풍길에는 차를 길가에 대고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넘치는 탄성과 유쾌한 웃음소리가 한적한 숲길의 고요를 깨뜨리곤 했다. 단풍길에 이어지는 단풍은 기왕에 우리가 만나는 칙칙하고 무거운 빛깔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선홍(鮮紅)! 단풍잎들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단풍나무는 가끔씩 보도를 사이에 두고 두 줄로 나란히 이어졌다. 그것은 마치 붉고 푸른 잎으로 이루어진 터널 같았다. 옥에 티는 햇살이었다. 해는 가끔씩 얼굴을 내밀었지만 햇살은 투명하지 않았다. 단풍은 무심하게, 뿌연 이내 같은 게 낀 듯한 하오의 햇살을 견디고 있었다.
나는 내장산을, 그 유명한 내장사의 단풍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글쎄, 팔공산 순환도로 단풍길의 단풍은 내장산의 그것에 비기면 '애기단풍'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팔공산에서 만난 이 '순정(純精)'의 단풍을 나는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대구의 진산이라는 팔공산은 멀리는 후삼국 시대 이른바 '공산전투'의 현장이었고, 가까이는 한국전쟁 때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느라 시신을 쌓아 올렸다는 곳이다. 팔공산의 단풍은 그 역사의 희생을 다만 선홍의 빛깔로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팔공산의 단풍을 보며 나는 개마고원은커녕 구월산이나 장수산의 단풍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무심히 왔다가 풍경이나 즐겨 사진기에 담고 떠나는 여느 행락객처럼 나는 단풍이 전하는 말은 알아들으려 하지도 않은 채 팔공산 자락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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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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