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정문 주변 공터에 수레를 갖다 놓은 뒤 물통에 물을 채우는 것으로 장사 시작을 준비한다.
박선희
지난 9월 26일 성공회대학교에서 특별한 개업식이 열렸다. '알바하기 싫은' 청년들이 학교 안 교문 옆에 식당을 차리고, 사장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바로 '꿈꾸는 슬리퍼'가 연 '꿈꾸는 거리식당' 개업식이다.
성공회대 노숙모임 '꿈꾸는 슬리퍼'는 2009년 겨울 만들어졌다. "집 구할 돈 없는데? 그럼 학교에서 살지 뭐."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학생들이 모인 모임이다. 이들은 고민하다 성공회대 내에 텐트를 쳤고, 20대의 빈곤에 대해 말하는 모임이 됐다.
그들은 어쩌다 '사장님'이 되었을까개업식은 수레를 배경 삼아 '눈에 보이는 라디오'처럼 진행됐다. 수레는 이전에 학내 노점을 운영했던 순대(예명)씨에게 기증 받았다. 식당 사장을 맡은 범삼씨와 정훈씨가 한마디씩 하고 축하공연도 이어졌다. 개업식에 온 손님들에게 아르바이트에 대한 사연과 신청곡도 받았다.
"저희가 사장이 된 이유는 사실 아르바이트 하기 싫어서입니다." (웃음)'사장' 범삼씨가 말했다.
"기계처럼 수동적이 되는 것도 싫고, 비인격적인 대우도 실고, 노동자가 소외당하는 비인격적인 일자리도 싫습니다. 오늘 개업식에서는 '20대는 왜 알바하기 싫을까'에 대해 시원하게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이날 개업식 메뉴는 갈비찜, 어묵탕, 유부초밥, 꽃게탕, 흰쌀밥이었다. 원래 가격은 1인당 3000원대지만, 이날은 개업식이니 공짜다. 손님들은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다. '무한리필'은 거리식당의 원칙이다.
개업식이 끝나고 한 달 뒤, 기자는 '꿈꾸는 슬리퍼'의 노숙을 체험해 보기로 했다. 함께 장사를 준비하고, 음식을 팔고, 텐트에서 자기로 한 것이다. 지난 1일 다시 찾은 거리식당은 생각보다 쓸쓸했다. 쌀쌀한 날씨 탓이기도 했다.
"월요일에 최저 매상 기록을 경신했어요. 의욕에 차서 준비했는데... 많이 추워져서 그런가봐요."정훈씨는 힘이 없어 보였다. 동업자 범삼씨는 개업식을 치르고 얼마 안 돼 군대에 갔다. 거리식당은 월수목 영업을 한다. 정훈씨는 월요일, 수요일 함께 일할 새 사장을 구했다. 하지만 목요일에는 혼자 장사를 한다. 며칠 전부턴 날씨가 문제다. 찬바람이 매섭게 부니 거리에 앉아 밥 먹으려는 사람이 없다.
"오늘 장사는 멸치국수 국물만 준비해서 간단히 할 거예요."오늘(1일)은 장을 보지 않고 있는 재료로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거리식당의 기본 메뉴는 멸치국수, 비빔국수, 카레밥, 유부초밥이다. 기분에 따라, 재료사정에 따라, 안 팔거나 추가되는 메뉴도 있다. 장사준비는 오후 2시께부터 시작한다. 일단 학생회관에 있는 총학생회실 옆 부엌에서 남은 식재료부터 확인한다.
밥으로 연결되는 작은 연대부엌에는 없는 게 없다. 밥통은 두 개나 있고, 버너는 세 개나 있다. 버너와 냄비를 꺼내고 자루에 멸치를 담아 국물을 낸다. 기자는 멸치국물을 내는 정훈씨 옆에서 부지런히 고명을 썰고 설거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