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텐트 노숙 3년만에 '사장님' 됐어요

성공회대 노숙모임 '꿈꾸는 슬리퍼'의 빈곤 투쟁

등록 2012.11.14 15:40수정 2012.11.1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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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성공회대 정문 주변 공터에 수레를 갖다 놓은 뒤 물통에 물을 채우는 것으로 장사 시작을 준비한다.

성공회대 정문 주변 공터에 수레를 갖다 놓은 뒤 물통에 물을 채우는 것으로 장사 시작을 준비한다. ⓒ 박선희


지난 9월 26일 성공회대학교에서 특별한 개업식이 열렸다. '알바하기 싫은' 청년들이 학교 안 교문 옆에 식당을 차리고, 사장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바로 '꿈꾸는 슬리퍼'가 연 '꿈꾸는 거리식당' 개업식이다.

성공회대 노숙모임 '꿈꾸는 슬리퍼'는 2009년 겨울 만들어졌다. "집 구할 돈 없는데? 그럼 학교에서 살지 뭐."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학생들이 모인 모임이다. 이들은 고민하다 성공회대 내에 텐트를 쳤고, 20대의 빈곤에 대해 말하는 모임이 됐다.

그들은 어쩌다 '사장님'이 되었을까

개업식은 수레를 배경 삼아 '눈에 보이는 라디오'처럼 진행됐다. 수레는 이전에 학내 노점을 운영했던 순대(예명)씨에게 기증 받았다. 식당 사장을 맡은 범삼씨와 정훈씨가 한마디씩 하고 축하공연도 이어졌다. 개업식에 온 손님들에게 아르바이트에 대한 사연과 신청곡도 받았다.

"저희가 사장이 된 이유는 사실 아르바이트 하기 싫어서입니다." (웃음)

'사장' 범삼씨가 말했다.

"기계처럼 수동적이 되는 것도 싫고, 비인격적인 대우도 실고, 노동자가 소외당하는 비인격적인 일자리도 싫습니다. 오늘 개업식에서는 '20대는 왜 알바하기 싫을까'에 대해 시원하게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이날 개업식 메뉴는 갈비찜, 어묵탕, 유부초밥, 꽃게탕, 흰쌀밥이었다. 원래 가격은 1인당 3000원대지만, 이날은 개업식이니 공짜다. 손님들은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다. '무한리필'은 거리식당의 원칙이다.

개업식이 끝나고 한 달 뒤, 기자는 '꿈꾸는 슬리퍼'의 노숙을 체험해 보기로 했다. 함께 장사를 준비하고, 음식을 팔고, 텐트에서 자기로 한 것이다. 지난 1일 다시 찾은 거리식당은 생각보다 쓸쓸했다. 쌀쌀한 날씨 탓이기도 했다.


"월요일에 최저 매상 기록을 경신했어요. 의욕에 차서 준비했는데... 많이 추워져서 그런가봐요."

정훈씨는 힘이 없어 보였다. 동업자 범삼씨는 개업식을 치르고 얼마 안 돼 군대에 갔다. 거리식당은 월수목 영업을 한다. 정훈씨는 월요일, 수요일 함께 일할 새 사장을 구했다. 하지만 목요일에는 혼자 장사를 한다. 며칠 전부턴 날씨가 문제다. 찬바람이 매섭게 부니 거리에 앉아 밥 먹으려는 사람이 없다.

"오늘 장사는 멸치국수 국물만 준비해서 간단히 할 거예요."

오늘(1일)은 장을 보지 않고 있는 재료로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거리식당의 기본 메뉴는 멸치국수, 비빔국수, 카레밥, 유부초밥이다. 기분에 따라, 재료사정에 따라, 안 팔거나 추가되는 메뉴도 있다. 장사준비는 오후 2시께부터 시작한다. 일단 학생회관에 있는 총학생회실 옆 부엌에서 남은 식재료부터 확인한다.

밥으로 연결되는 작은 연대

부엌에는 없는 게 없다. 밥통은 두 개나 있고, 버너는 세 개나 있다. 버너와 냄비를 꺼내고 자루에 멸치를 담아 국물을 낸다. 기자는 멸치국물을 내는 정훈씨 옆에서 부지런히 고명을 썰고 설거지를 했다.

a 거리식당의 장사준비 학생식당에 있는 부엌에서 식재료를 확인한 후 장사를 준비한다.

거리식당의 장사준비 학생식당에 있는 부엌에서 식재료를 확인한 후 장사를 준비한다. ⓒ 박선희


장사 준비가 마무리될 즈음 정훈씨 친구가 부엌으로 찾아왔다. 정훈씨는 자신있게 멸치국물을 그에게 내밀었다. 육수 망 속에 멸치를 쏟아내 버리는데 큰 멸치들이 수북히 나왔다. 

"오 맛있어! 그런데 멸치를 이렇게 많이 넣으면 남는 게 있어?"

친구의 반응은 좋았다. 하지만 정훈씨는 다소 난감해 했다. 비싼 식재료를 사면 많은 사람들에게 먹일 수가 없고, 싼 걸 사면 좋은 먹거리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리를 하다보면 맛에 욕심이 생겨 좋은 재료를 듬뿍듬뿍 넣을 수밖에 없다. 정신없이 준비한 재료들을 수레에 옮기니 시간은 벌서 오후 5시 30분.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a  학생들이 꿈꾸는 거리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학생들은 국물까지 말끔하게 비웠다.

학생들이 꿈꾸는 거리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학생들은 국물까지 말끔하게 비웠다. ⓒ 박선희


오후 6시면 학부생 저녁 수업이 끝나기 때문에 하교하는 학생들이 정문을 지나간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이다. 종종 거리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는 오병훈(사회과학부)씨도 친구 다섯 명과 함께 왔다. 음식만 후딱 먹고 가는 사람도 있지만, 음식을 다 먹은 뒤 사장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사람도 많다. "날씨가 추워지니 천막을 치고 장사하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프로젝트 식당'이라 다음주까지 하려고 했는데, 여러 사람들이 천막을 구해 주신다니 잘 모르겠어요."

꿈꾸는 거리식당은 학생들보다 주민들이 더 많이 이용한다. 가끔은 거리식당 취지를 듣고 잔돈을 안 받고 그냥 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식당의 취지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건 아니다.

왜 학교에서 텐트 치고 사냐고?

장사 준비 전, 정훈씨는 학생지원처에 다녀왔다. 학교에서 끌어쓰던 전기를 시설팀에서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학생지원처장은 정훈씨의 말을 귀기울여 들었지만 그를 이해하진 못했다.

"아니, 왜 텐트에서 자는 거야? 안 추워? 기숙사에서 살면 되지. 동아리방에서 자던가. 돈이 없으면 장학금을 받아. 그건 학생의 특권이야. 우리도 장학금 주고 싶어."

'꿈꾸는 슬리퍼'가 학교에서 노숙을 하는 건 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운동의 일환이기도 하다. 20대 청년이 아르바이트를 해 한 달에 30~40만 원 하는 방세를 내는 등 생활비를 부담하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꿈꾸는 슬리퍼'는 비싼 대학 등록금도 청년 주거난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직접 노숙을 하면 청년 빈곤문제를 몸으로 알리는 거다.

거리식당을 준비할 때는 의자가 말썽이었다. 정훈씨는 학생회관에서 안 쓰는 의자 두 개를 가져왔다. 경비원은 그런 정훈씨를 향해 소리쳤다.

"거 학생! 그 의자 누구 허락받고 가져온 거야?"

학생회관 한 켠에 방치되어 있던 것이었다. 용도 그대로 앉는데 쓸 것이니 망가질 일도 없었다. 정훈씨는 의자를 사용하기 위해 한동안 실랑이를 해야 했다.

거리식당 영업은 대학원 수업이 다 끝나는 밤 10시에 끝났다. 설거지를 하고 수레를 텐트 옆으로 옮기면 하루 일과는 끝난다. 학교의 중앙 다리 밑에 있는 텐트는 두 채. 한쪽엔 간이 침대가 있고, 다른 한쪽엔 정훈씨의 짐이 있다. 노숙모임에 사람이 많을 땐 서너 명도 텐트에서 살았다. 범삼씨가 군대간 뒤에는 정훈씨만 텐트에서 잔다. 가끔 친구들이 종종 놀러와 함께 자기도 한다.

a 꿈꾸는 슬리퍼의 텐트 청년들의 빈곤과 주거문제를 제기하는 성공회대학교 학생 모임 '꿈꾸는 슬리퍼'의 노숙 텐트.

꿈꾸는 슬리퍼의 텐트 청년들의 빈곤과 주거문제를 제기하는 성공회대학교 학생 모임 '꿈꾸는 슬리퍼'의 노숙 텐트. ⓒ 박선희


"사실 텐트에서 사는 건 겨울보다 여름이 더 힘들어요. 이불까지 축축해지거든요."

추우면 난로를 켜면 된다. 하지만 더우면 텐트 안은 대책이 없다. 습기에는 속수무책이다. 텐트의 벽쪽 문을 열어 환기시키지만 큰 효과는 없다.

텐트 안은 상상 이상이었다. 1평 남짓한 공간에 없는 게 없었다. 실내 위쪽에 걸린 줄에는 옷가지와 수건 등이 널려 있었다. 물론 좁고 어두워 답답하긴 했다. 랜턴을 켜도 수첩에 글씨를 조금 쓸 수 있을 정도였다. 밖에서는 휭휭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따뜻했지만 발이 시렸다

텐트에 살지만 노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새벽이면 고양이가 쓰레기봉지를 뜯는 소리, 늦게까지 놀다 기숙사에 들어가며 통화하는 학생의 목소리 등 여러 소리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과거 어느날에는 텐트에 노상방뇨 하는 사람을 잡은 적도 있다고 한다.

"태풍왔을 때 친구네 집에서 잤는데, 다음날 아침 텐트에 와보니 주민분이 자고 있었어요."

텐트 생활을 응원해 주던 주민이었다. 신입생을 데려와 텐트를 소개하는 선배도 있었다. 그렇게 여러 일을 겪으며 지낸 게 벌서 3년째다. "어떻게 3년이나 모임을 이끌었냐"고 물으니 정훈씨가 깜짝 놀란다.

"우리는 이끄는 사람이 없어요. 모두 평등해요. 노숙모임은 권위주의에 반대해요. 모든 것을 함께 논의하고 함께 정해요.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구속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함께 하다보니 제 길을 찾아 스쳐지나간 사람도 많다. 사실 그것이 '꿈꾸는 슬리퍼'의 가장 큰 고민이다. 군대에 가고, 졸업을 하고, 각자 제 길을 찾아가다보니 앞으로 노숙모임을 학교 안에서 계속 할 사람이 없다. 3년 동안 활동한 정훈씨도 졸업을 앞두고 있다.

권위주의에 반대하고, 엄숙주의를 거부하면서 문제를 재미있게 드러내는 것. 또 외부의 도움 없이 당사자가 직접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것. 이는 '꿈꾸는 슬리퍼'가 말하고 운동하는 방식이다. 운동을 모르던 학생들이 여러 고민을 안고 노숙모임을 찾았던 일은 '꿈꾸는 슬리퍼'의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이런 활동도 이제 맥을 잇기가 어렵게 됐다.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이 없는 탓이다.

새벽에 잠든 기자는 아침 일찍 눈을 떴다. 가스난로 덕분에 춥지는 않았다. 텐트 밖은 소란스러웠다. 오전 6시엔 쓰레기를 치우는 문제로 경비원과 학생들이 실랑이를 했다. 7시엔 담배 피우는 학생들 끼리 언쟁이 벌어졌다. 8시엔 아침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 목소리가 들렸다. 기자는 8시 반에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눈꼽을 떼고 머리를 정돈했다. 새벽 동안 꽁꽁 얼어 있던 발을 라디에이터에 가만히 댔다.

텐트 안은 생각보다 따뜻했지만 발은 시렸다.
덧붙이는 글 박선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단 3기 '오마이 프리덤'에서 활동합니다.
#꿈꾸는 슬리퍼 #대학생빈곤 #대학생주거 #대학생자립 #청년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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