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갈 때는 도시락을 준비하세요

[제주탐험] 천년의 숲 비자림에 가다

등록 2012.11.12 15:44수정 2012.11.1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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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요정의 숲으로 들어가는 듯한 신비로움이 가득한 곳
비자림요정의 숲으로 들어가는 듯한 신비로움이 가득한 곳이국화

제주 구좌읍 평대리에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독특한 형태의 숲이 있다. 평균 수령 500~800년에 이르는 2800여 그루의 비자나무가 서식하고 있는 군락지, 가장 원시적이고 자연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곳, 허나 도도한 도시녀처럼 순순히 그 모습 그대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자가용이 있다면 친절한 가이드인 내비게이션에게 물어보면 단번에 해결될 일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관광객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렇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떻게 가는지 이동경로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결국 반갑게 맞이해주는 건 비자림의 주인 비자나무일 테니까.


들어서는 입구부터 숲 중간에 있는 산책길, 돌아 나오는 출구까지 사방 천지가 비자나무다. 비자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아 연중 푸르른 숲을 유지하는 한결 같은 나무다. 한 번 뿌리내리면 죽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아무리 거센 풍랑이 몰아쳐도 제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충실한 나무,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다음 생에 태어나면 나무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곤 하는가 보다. 

돌탑 켜켜이 차곡차곡하게 쌓아올린 누군가의 소망
돌탑켜켜이 차곡차곡하게 쌓아올린 누군가의 소망이국화

비자림 사방 천지, 어디에 눈을 두어도 보이는 것은 비자나무다
비자림사방 천지, 어디에 눈을 두어도 보이는 것은 비자나무다이국화

녹음이 짙은 비자나무 숲은 피톤치드로 알려진 물질이 흘러나온다. 막힌 혈관을 유연하게 해주고 정신과 신체적 피로를 안정시키는 자연건강 치유효과가 있다. 햇살 가득 머금고 바람 따라 불어오는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그저 숨만 내쉬고 마셔도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숲의 가장자리에는 820살 이상 된 새천년 나무가 있다. 굵기가 성인 남자 팔 벌려 네 아름, 키가 14m나 된다. 웅장한 크기와 아름다운 빛깔로도 충분히 놀라운데 수령에 두 번 놀라고, 더욱 놀라운 것은 최고령 할아버지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수령 900살에 다다른 할아버지는 이보다 더 나은 환경으로 옮겨져 특별 관리를 받고 있다. 인간이 늙어 죽음을 기다리 듯이, 제 힘으론 움직일 수 없어 요양원에 보내진 것처럼 마지막 노생을 보내고 있으리라. 비록 제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지만 오랜 세월 묵묵히 살아온 터줏대감이 있기 때문에 천년의 숲이라는 이름이 빛을 발한다.  

숲을 돌아 나오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약 40여분이 걸리는 짧은 코스와 1시간 20분이 걸리는 긴 코스다. 중간중간 나무 데크도 깔려 있고 경사지거나 거친 구간이 없어 두 코스 모두 돌아도 크게 무리되지 않는다. 다른 나무에 비해 유달리 큰 키 때문에 푸른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따끔씩 밝은 햇살을 보여주며 장난을 하지만, 말리는 시누이처럼 얄밉기만 하다.  

어머니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람
어머니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람이국화

엄마와 떠나는 여행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박장대소 큰 소리로 웃지 않더라도 해맑게 미소 짓고 있는 엄마의 표정만 봐도 단단한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엄마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내가 이세상에 태어날 수 있게 해준 사람이면서, 비밀스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따끔한 충고와 아낌없는 격려를 해줄 수 있는 스승, 힘들 때 곁을 지켜주는 애인. 가끔 주변에서 묻곤한다. 엄마랑 여행 다니면 불편하지 않느냐고, 싸우기도 할 거고 맞지 않는 부분도 많을 테고, 아무래도 엄마니깐 딸로서 양보해야 하는 부분이 더 많지 않겠느냐고. 어느 관계가 그러지 아니할까. 가장 가까운 사람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누구의 마음을 얻고 감동시킬 수 있을까.

비자림에 찾아온 사람도 참 다양하다. 다정히 손 마주하고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커플, 어린 아이를 포함한 단란한 가족, 아직 말조차 하지 못하는 갓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온 할머니, 주름진 얼굴로 어린아이보다 더 해맑게 웃고 있는 노년의 커플, 나처럼 엄마와 함께 온 모녀, 중년아버지와 멀찌감치 떨어져 걷는 부녀. 각기 다른 모습과 이유로 왔겠지만 그들의 마음은 오직 하나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     


*** 여행 Tip

- 서귀포 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회일주버스를 타고 구좌읍 평대리에서 내려 세화/김녕 순환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순환버스는 1시간마다 운행되기 때문에 시간표를 미리 확인해두는 것이 좋다. 택시를 탄다면 요금이 6000원으로 똑같다. 서울과 다르게 콜을 불러도 콜비를 따로 받지 않는다.

날씨가 화창하다면 걷는 것을 추천한다. 나 같은 경우 갈 때는 택시를 타고 올 때는 걸어왔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돌담과 밭둑을 벗삼아 현장학습을 해본다. 집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들이지만 매번 볼 때마다 헷갈리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아 두겠다며 엄마께 묻고 또 묻길 열 대번, 이젠 확실히 알게 되었다. 어른인 나도 야외 공부 덕을 톡톡히 보는데, 아이들이라면 얼마나 효율적일까.

- 도시락은 준비하는 것이 좋다. 매표소 앞에 식당 겸 매점이 하나 있긴 한데, 사먹기보다는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소풍가는 설렘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자그마한 돗자리 하나 깔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도란도란 담소도 나누고, 비자나무의 싱그러움을 맡으며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보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에 게재하였습니다.
http://blog.naver.com/lkhsky100424/150151398910
#비자림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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