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중 최고의 하이라이트 피나투보. 부모님은 고난의 행군이라고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다.
조영미
"차 조심해라, 밥 잘 챙겨 먹고 다녀라!"
초등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 아들을 둔 나에게 이런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친정엄마다. 시집을 가서도 아직까지 부모님 잔소리를 졸업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친정에서 전세살이를 하기 때문. 엄마의 잔소리는 나만 보면 속사포처럼 터져 나오는가 보다. 평소에도 잔소리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면 슬금슬금 빠져나오기 바쁜데, 남편은 이런 내 상황을 알면서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가족여행을 택했다. 사실, 남편만 탓할 수가 없다.
이번 여행을 기획하면서 나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저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을 뿐이다. 선뜻, 해외로 여행지를 정한 것은 순전히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까지 챙겨 가는데, 부모님께 여행 간다는 말만 던지고 떠나기가 좀 미안했다. 이런저런 눈치로 미적거리는 사이, 부모와 함께 떠나는 가족 대이동이 되었다.
그래서 정한 여행 목적은 '우리는 한 가족, 제발 친해지길 바라'다. 가족여행을 결심하고도 찜찜한 것은 다름 아닌 부모님 잔소리 때문. 잔소리탱크(언제, 어디서나 퍼붓는 잔소리 저장고 같아서 붙여준 별명)를 끌어안고 4박 6일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엄마와의 관계가 데면데면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들을 맡기면서부터다. 친정살이가 시집살이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있지 않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정부모와 함께 산다고 하면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름의 고충이 있다. 특히, 엄마가 아프기라도 하면 내가 아이를 맡겨놔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괜히 죄송스럽다. 그러니 이런저런 잔소리를 들어가며 지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갑자기 늘어난 대가족여행. 별로 흥도 안 나는 여행이라는 생각에 별다른 준비도, 기대도 없었지만, 부모님의 기대는 장난 아닌 듯하다. 아빠는 얼굴만 마주하면 필리핀이라는 나라에 관해서 언제 공부했는지 세세하게 알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했다.
젊은 시절, 월남전 시절 동남아 지역에 갔었던 아빠는 만나기만 하면 그곳 기후와 현재 기온에 대해 이야기 하느라 바빴다. 또 우리가 가는 필리핀 수빅에 한진중공업이 있으며, 최근에 미군기지가 있다가 철수했다는 뉴스까지…. 아빠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나에게 전했다. 인터넷도 잘 못하는데 그런 정보는 어디서 다 알았는지…. 여행 동안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고 등등 여행정보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보를 좌르르 꿰고 있었다. 아빠의 정보력에 가끔 놀랄 때가 있는데, 이번이 바로 그때다.
그렇게 떠난 여행길... 벌써부터 불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