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7일 비오는 가운데 방송국에서 철탑농성장 촬영중.
변창기
현대차는 2004년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당시 최병승씨는 하청업체 입사한 지 2년이 지난 후였고 노조활동을 이유로 해고되었습니다. 그 후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서 현대차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현대차는 김앤장이라는 유능한 법률사무소에 의뢰해서 최병승씨 소송에 맞대응했습니다. 고등법원 패소, 그리고 검사의 불법파견 무혐의 처분은 최병승씨와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원을 절망케 했습니다. 저도 2000년 7월 초에 현대차 사내 하청업체에 들어가 일했고 노동부 불법파견 판정소식을 듣고 노조에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하던 때였습니다.
담당검사의 무혐의 처분은 저에게도 심한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게 2005년이었습니다. 최병승씨는 "이왕 시작한 거 갈 데까지 가보자"며 생계를 힘들게 이어가며 대법원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대법원 하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매우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곳이라 여깁니다. 최병승씨도 속으론 '이길 수 없겠다'고 여겼을 정도이니 그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현대차는 막대한 돈을 써서 유명한 변호사를 채용하여 대응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희망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헌데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절대로 노동자 편에 있지 않을 거 같다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뒤엎고 2010년 7월 22일 대법원 판사는 '현대차는 불법파견'이라고 판결 내린 것입니다. 현대차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통해 즉각 항소했으나 2012년 2월 23일 다시 한번 불법파견을 확인하는 최종판결을 내렸습니다.
최종판결이 나던 날 저도 대법원에 있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승소 당사자인 최병승씨는 그자리에 없었습니다. 현대차가 그를 2011년 12월 25일간 지속된 점거파업 주동자로 몰아 고소했고 검찰은 즉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수배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최종판결이 있는 그날도 대법원에 나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수긍하겠다"던 현대차는 그 발표를 뒤집고 다시 행정소송을 진행했습니다. 불법파견 대법판결에 대해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버틸 수 있는 한 버티겠다는 속셈이 깔려 있었습니다. 온당치 못한 대기업 행위에 대해 저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그런 가운데 철탑에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살고 싶어서 철탑에 올라왔다"는 최병승씨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10년 일한 현대차에서 말 한마디로 해고당한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