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입구의 백범 선생 흉상
박도
'너, 그것도 몰랐니?'라고 그를 꾸짖으려다가 저는 말문을 닫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해방 후 우리 교육의 현주소로, 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몇 해 전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용 선생의 증손 이항증 선생과 일송 김동삼 선생의 손자 김중생 선생의 안내를 받으며 보름 동안 중국에 흩어진 항일유적지를 답사했습니다.
저희 일행은 상하이시 마당로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찾아 1층 회의실에 마련된 선생님의 흉상에 묵념을 드리고, 2층 집무실 벽에 걸려있는 이승만, 박은식, 이상룡, 홍진, 김구, 이동녕 선생의 사진 앞에서도 고개를 깊이 숙였습니다.
'4·29 분화(噴火)'
집무실 한쪽에 마련된 나무 침대에서 선생의 체취를 맡은 뒤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할머니가 깊은 밤 쓰레기통에서 채소장수들이 버린 배추 겉껍질을 주워 잡수셨다는 보경리 일대의 골목길을 거닐어보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 루쉰(홍구)공원 윤봉길 의거지를 찾아 '4·29 의거 표지석' 앞에서도 묵념을 드렸습니다. 그런 뒤 뤼쉰공원에 있는 월홍교 옆 나무의자에 앉아 쉬면서 <백범일지>를 펴들었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오전 11시 40분 뤼쉰공원에서 거행된 천장절(일왕 히로히토의 탄생일) 경축과 상하이사변 승전 기념식장에 모든 참석자들이 빳빳이 선 채로 해군 군악대 주악에 맞춰 일본 국가 키미가요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