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사고'(normal accident)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페로우는 후쿠시마 사고 후, 원자과학자회보에 사고를 분석하는 글을 발표했다. 원자력발전 같은 현대의 복합적인 기술 시스템에서는 그 속성상 결국 대형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맥락에서 '정상 사고'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원자력발전은 대단히 복잡한 기술이기 때문에,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와 경고장치가 설치된 상태에서도 작은 고장들의 상호작용으로 결국은 어떤 설계자도 예측할 수 없고 어떤 운전자도 이해하지 못하는 대형 사고가 일어난다는 게 페로우의 진단이다. 그는 1979년에 일어난 스리마일 사고와 체르노빌 사고를 정상 사고로 본다. 후꾸시마 사고도 물론 정상 사고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페로우는 후꾸시마 사고가 비록 정상 사고라 해도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고 사전 경고신호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즉 이익추구를 위해 안전이 경시되는 일이 없었다면, 그런 사고가 일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 원전 같은 복합기술도 규제·경고·안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면 대형사고를 피할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는 것이다. 규제와 관련해서 그는 유럽과 미국·일본을 대비시킨다. 그는 유럽에서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힘이 크지 않고 국가의 규제가 미국이나 일본보다 더 엄격하기 때문에, 유럽의 원전이 미국·일본보다 더 안전하다고 판단한다.
규제·경고·안전이 모두 무시된 원자력 운영
그는 미국의 경우 1975년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서는 규제를 담당하고 원자력의 진흥은 에너지부에서 담당하게 되면서 규제기구가 독립됐지만, 여전히 규제위원회의 활동이 유럽 국가에 못 미친다고 본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로서 그는 2000년대 초에 NRC가 한 상원의원의 압력에 무릎 꿇은 사례를 제시한다. 당시에 NRC는 몇 차례의 대형사고로 번질 수 있는 사고가 발생하자 원전의 검사 횟수를 크게 늘렸다. 그러자 원자력산업계로부터 많은 선거자금을 받은 뉴멕시코주 출신 상원의원이 NRC의 최고 간부에게 검사 횟수를 줄이지 않으면 예산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협박했다. NRC는 결국 검사 횟수를 줄임으로써 항복하고 말았다.
우리 정부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서는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이 문제없다는 근거의 하나로 미국에서도 원자로의 수명을 60년으로 연장해준다는 사실을 제시하는데, 그 인가기관인 NRC는 바로 한사람 상원의원의 압력에도 굴복하는 그런 나약한 기구인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원전은 정상 사고에 얼마나 취약한지 페로우의 주장에 의거해 분석해보자. 올 2월에 발생한 고리 1호기의 정전사고가 한달 이상 은폐되었다는 사실은 규제·안전·경고 모두 무시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고 은폐가 적발된 후 시행된 국제원자력기구의 조사에서 고리 1호기 원전 운전자들의 20%만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다는 사실이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스리마일·체르노빌·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규제·안전·경고에 대한 무시가 사소한 고장이나 작은 설계결함과 상호작용함으로써 발생했다. 지난여름 적발된 한수원 간부와 직원들의 납품비리와 이번에 드러난 영광원전 5·6호기의 수많은 가짜부품 사용은, 위의 안전의식 결핍과 상호작용해서 원전의 작은 고장이나 사소한 결함이 대형사고로 확대될 위험이 크다는 점을 암시한다.
연이어 터지는 원자력 비리, 대재앙으로 번지지 않으려면
지난여름에는 고리와 영광 원전에서만 비리가 저질러졌으며 본부 처장급 2명을 비롯해 수십명이 비리에 연관됐다는 게 드러났지만, 이번에 적발된 수많은 가짜부품 사용은 이러한 비리가 한수원 전체에 넓게 퍼져 있고 우리나라 원전 거의 전체에 정품이 아닌 성능미달 기기가 설치돼 돌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름에 적발된 것은 성능미달 보온재·중성자검출기 밀봉 유니트 모조품 등이다. 이번에 밝혀진 영광원전 5·6호기의 경우 5000개 이상의 다양한 부품들이 성능 미달이다. 정부에서는 이들 제품이 소모품이기 때문에 원전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것들만 따로 독립적으로 분리해서 판단하면 안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능미달 제품들이 여기저기 설치돼 있으면 작은 고장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고, 이러한 고장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누적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다면 규제·경고·안전이 존중되지 않고 성능미달 제품이 곳곳에 있는 우리나라 원전은 페로우의 정상 사고가 일어날 위험을 상당히 크게 안고 있는 셈이다.
원자력 발전이 처음 시작될 때 그 기술적 아버지의 한사람인 알빈 와인버그는 원자력 기술은 대단히 복잡하고 위험한 기술이기 때문에, 이 기술은 오직 핵사제단(nuclear priesthood)이라는 전문가 집단이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제단이란 가톨릭의 사제단과 같이 자기 육신의 욕심을 버리고 고귀한 목표를 위해 전생애를 바친다. 와인버그는 바로 이러한 헌신적인 사제단에 의해서만 원자력 기술이 제대로 제어될 수 있고, 인류의 번영을 위해 안전하게 이용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고리 1호기의 정전사고 은폐에 뒤이은 한수원의 각종 비리를 봤을 때, 우리나라 원전을 담당하는 사제단은 우리 사회의 번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우리 신체의 혈액 같은 역할을 하는 전력의 생산이라는 고귀한 목표를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 같다. 와인버그에게 우리나라의 핵사제단을 평가하라 한다면, 그는 이들은 사이비 사제단이고 그들에게 맡겨진 우리나라 원전은 매우 위험하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급한 것은 월성이나 고리의 낡은 원자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원전 전체가 위험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것들에 사용된 부품 하나하나의 성능을 점검해 비품을 정품으로 교체하는 일이다.
또한 원전 종사자 한사람 한사람의 안전의식을 세심하게 점검해 그 의식을 사제의 수준으로 높여야 하며 미국 수준보다 규제를 훨씬 더 강화해 원전의 안전성을 크게 높여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원자력으로부터 벗어나 에너지전환으로 나아가야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