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 옥상에서 바라본 풍경. 바로 앞 해변에 가려다 봉변을 당했다.
김다솜
나는 모험심으로 무장한 채 지도 한 장만 달랑 들고 다바오 시티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모험심이라 부르던 그 마음이 엄청난 일을 부를 줄은 이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가 머무르게 된 곳은 해변가에 위치한 펜트하우스였는데, 풍경이 일품이었다. 폭풍이 지나간 다음 날 밤하늘에 수놓아진 별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마음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오후 10시. 나는 룸메이트 친구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해리야. 해변가에 누워서 별 보면 기분이 어떻겠노.""내는 안 갈란다. 니 트라이시클(필리핀의 대중 교통 수단) 아저씨들이 우리 쳐다보는 눈빛 못 봤나." (필리핀 사람들은 피부가 까매서, 한국 사람처럼 하얀 피부의 동양인을 무척 좋아한다.)"개안타. 내 통뼈다." 그렇게 룸메이트 친구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펜트하우스에서 해변까지는 걸어서 7분 정도 걸렸다. 해변가로 가려면 좁은 골목길을 지나야만 했다. 시커먼 골목길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벽에 붙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내 엉덩이를 만졌다. 여자의 직감은 무섭다. 나는 순전히 감에 의존해 놈(?)을 향해 발길질을 해댔다.
나는 화가 나서 그 녀석에게 한국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 녀석의 목덜미를 잡고 밝은 곳으로 끌고 나왔다. 앳된 얼굴이었다. 정수리를 기준으로 한 쪽은 검은색, 한 쪽은 노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다. 꼬질꼬질한 농구복은 만지기도 싫었다. 그 녀석 뒤에는 더 무섭게 생긴 녀석들이 있었다. 아마도 친구들인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자리에서 다짜고짜 때렸다. 내 주먹이 솜주먹인가. 내가 때리고 있는데도 그 녀석은 안 아프다는 듯이 실실 웃고 있었다. 그 녀석은 웃으면서 친구들과 어두운 곳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내가 말한 한국 욕을 따라 하면서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쫓아가고 싶었지만, 무서웠다.
내가 아는 영어로 된 욕을 총동원해서 그 녀석의 뒤통수에 날렸다. 점점 녀석들의 웃음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계속 씩씩 거리고 있었다. 짧은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같이 밖에 나온 룸메이트 친구는 "무슨 일이냐"고 계속 되물었다. 나는 분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